26권으로  진나라 장양왕의 즉위에 공을 세우고 시황제 초기까지 재상으로 재임했던 여불위가 식객 3,000명에게 저술을 맡겨 편찬했다고 한다.

〈십이기 十二紀〉·〈팔람 八覽〉·〈육론 六論〉으로 구성되어 있다.

〈십이기〉의 춘하추동에서 '여씨춘추'라는 명칭이 생겼으며, 〈팔람〉에서 이름을 따 '여람'이라고도 한다.

〈십이기〉는 4계절의 순환과 만물의 변화, 인사의 치란·흥망·길흉의 관계를 기록하고 있다.

〈팔람〉은 유시·효행·신대·선식·심분·심응·이속·시군 등 8부로, 〈육론〉은 개춘·신행·귀직·불구·사순·사용 등 6부로 되어 있다.

 도가·유가·법가·음양가·농가 등의 여러 설과 시사를 수록하고 있어 선진시대의 사상사 등을 연구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자료이다. - Daum 백과 사전 참조 -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성색을 적절히 하고 기호하는 욕망을 절제하며 꾀를 버리고 거짓된 것을 버리고서,

마음을 끝없이 넓은 공간에서 아무런 구속없이 노닐게 하며, 마음을 무위의 도에 맡기는 것이다.

 

사람의 기량을 평가할 때는 또한 반드시 여섯 가지의 혈육과 네가지의 주위 사람을 보아야 한다.

무엇을 일컬어 여섯 가지의 혈육이라 하는가? 아비, 어미, 형, 아우, 처, 자식 등이 그것이다.

무엇을 일컬어 네 가지의 주위 사람이라 하는가? 교제하는 벗, 오랜 친구, 동네, 가까운 신하 등이 그것이다.

안으로는 여섯 가지의 혈육과 네 가지의 주위 사람을 활용하고, 밖으로는 여덟 가지의 관찰과 여섯 가지의 시험을 활용하면,

사람의 진실됨과 가식, 탐욕스러움과 비루함, 아름다움과 추함, 그 어떠한 것도 빠뜨리지 않게 된다.

 

배운다는 것은 앎 중에서 가장 큰 것이다....

앎의 가장 큰 것 중에서 어떠한 것도 몸을 수양하여 인격을 이루는 것보다 큰 것이 없고,

몸을 수양하여 인격을 수양하여 인격을 이루는 것 중에서 어떠한 것도 배움보다 큰 것이 없다.

 

배우기를 잘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나은 점을 빌림으로써 자신의 모자라는 점을 보충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빌리는 사람은 마침내 천하를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욕심을 내는 것은 귀, 눈, 코, 입이지만, 이를 즐기는 것과 즐기지 않는 것은 마음이다.

마음이 평화롭고 난 다음에야 즐거운 것이고, 마음이 즐겁고 난 다음에야 귀, 눈, 코, 입이 욕심을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즐거움이 힘써야 하는 일은 마음을 평화롭게 함에 있고, 마음을 평화롭게 함은 표준을 행함에 있다.

 

삶을 깊이 살펴 아는 것은 성인의 요체이고 죽음을 깊이 살펴 아는 것은 성인의 극치다.

삶을 안다는 것은 삶을 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을 잘 길러주는 것을 가리키고,

죽음을 안다는 것은 죽음을 해치기 위한 것이 아나라 죽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을 가리킨다.

 

일을 일으키고자 할 때는 먼저 결과를 헤아려보아야 하고, 결과를 헤아려보고자 할 때는 먼저 명분을 바로잡아야 하고,

명분을 바로잡고자 할 때는 먼저 말을 잘 살펴야 하고, 말을 잘 살펴보고자 할 때는 먼저 그 일을 밝혀야 한다.

사람이 비록 지혜롭다 하더라도 때를 만나지 않으면 좋은 결과가 없게 된다.

한창 잎사귀가 무성할 때는 하루 종일 잎을 따도 그것이 줄어드는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가을 서리만 내리면 뭇 숲은 모두 낙엽진다.

일의 어렵고 쉬움은 일의 크기에 있지 않으니 힘써야 할 일은 때를 아는 것에 있다.

 

어지러운 세상의 백성들이 소리 없이 조용한 것은 현자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현자를 본다면 그에게로 감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에게로 간다는 것은 몸이 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감을 뜻하는 것이다.

 

하늘은 두 번 다시 기회를 주지 않고 때는 오래 머물지 않으며, 능력은 두 번 다시 정교해지지 않으니, 거사는 마땅히 난세와 맞물려야 하는 것이다.

 

큰 추위가 들이닥치고 서리와 눈이 내리고 나니, 나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무성함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옛날에 도를 얻은 사람은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도를 즐겼고, 높은 지위에 오르더라도 역시 도를 즐겼다.

즐기는 바가 곤궁함과 현달함이 아니므로 여기에서 도를 얻으면 곤궁함과 현달함이 같은 것이 되니, 이는 마치 추위와 더위, 바람과 비가 바뀌어 일어나는 것과도 같다.

 

지혜롭다는 것은 사람이 먼 장래의 일에 능히 접촉할 수 있다는 것이고, 어리석다는 것은 코앞의 일에만 접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질을 살피고 이름을 정함으로써 진실을 추구하고, 그 말을 듣고서 사리를 관찰함으로써 어그러짐이 없도록 한다.

 

도를 얻은 사람은 반드시 고요하다.....

하늘은 크게 고요하기 때문에 고요하고도 또 고요하여져서 천하의 올바른 규범이 될 수 있음을 뜻한다.

몸으로써 마음을 간직하고 마음으로써 지혜를 간직하니, 지혜는 깊이 간직되어 있어서 그 실질은 아무도 엿볼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말이란 뜻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말과 뜻이 서로 떨어진다는 것은 재앙이다.

어지러운 나라의 풍속은 근원도 없이 떠도는 말은 많으면서도 그 진실은 돌아보지 않고 서로 헐뜯는 데 힘쓰고 서로 칭송하는 데 힘씀으로써

헐뜯음과 칭송이 무리를 이루며, 여러 사람의 입이 하늘을 채워 울려서 현명한 자와 어리석은 자가 구별되지 않으니,

이러한 것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면 똑똑한 군주라도 오히려 미혹될 터인데 하물며 어리석은 군주에 있어서랴?

 

이치라는 것은 옳고 그름의 표준이다.

그러므로 말은 잘하는데도 이치에 맞지 않으면 가식하는 것이 되고 지혜로운데도 이치에 맞지 않으면 속이는 것이 된다.

 

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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