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책이다.

우선 인상적인 글을 옮겨본다.

다시 읽어야 한다. 사고에는 분명히 도움이 될 책인 것 분명하다.

 

"나는 그 아이디어가 난데없이 떠오른 순간을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정확한 연도는 잘 모르겠다.

1906년에서 1909년 사이였을텐데 아마도 1907년이었지 싶다.

아내가 어린 어이들을 돌보느라고 바쁜 오후 무렵이면 나는 흐로닝언의 교외로 산책을 나가곤 했다.

어느 일요일 그런 산책길에서 담스테르디에프 강을 따라 산책하다가

중세 후기가 쇠락과 몰락의 시대라기 보다 미래에 대한 서곡의 시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중세의 가을] 2장 "보다 더 아름다운 삶을 위한 갈망"에서 중세인들 앞에 놓인 삶에는 세 가지의 길이 있었다고 말한다.

하나는 이 험난하고 참담한 세상을 부정하는 길이다.

두 번째는 그런 세상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그것을 더 좋고 더 행복한 세상으로 만드는 길이다.

세 번째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지 못하지만 그것을 꿈꾸는 것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이런 종류의 연기를 펼칠때 상상력이 충만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린아이는 실제의 자신과는 다른 어떤 것, 더 아름다운 것, 더 공상한 것, 더 위험스런운 것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하여 아이는 왕자가 되고 아버지가 되고 사악한 마녀가 되고 혹은 호랑이가 된다.

어린아이는 문자 그대로 기븜에 넘쳐 자기 자신의 밖으로 나가 버린다.

너무 황홀하여 자신이 왕자, 마녀, 호랑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그러는 중에서도 "일상적 현실"에 대한 감각을 유지한다.

그의 재현(다른 것이 되기)는 가짜 현실이라기보다 외양의 실현이다. 바로 이것이 imgination의 원뜻이다.

 

"호모 사피엔스: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

"호모 파베르: 물건을 만들어 내는 인간"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를 펴내는 목적은 놀이 개념을 문화의 개념과 통합하려는 것이다.

 

놀이에는 어떤 중요한 의미가 "놀고 있는데(작용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생활의 즉각적인 필요를 초월하는 것으로서 그 행동 자체에 가치를 부여한다.

 

"인간의 일은 아주 진지하게 대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그래도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

행복은 별개의 것이다........ 나는 인간이 진지한 사항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대해야 하고 그 반대로 대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오로지 하느님만이 최고의 진지함을 행사할 수 있다.

인간은 하느님의 놀이를 놀아 주는 자이고 그것이 그의 가장 좋은 역할이다................

인간은 전적으로 나쁜 존재는 아니고 약간의 배려를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요.

 

인간의 마음은 궁국적인 것으로 시선을 돌릴 때 놀이라는 마법의 원으로부터 풀려날 수 있다.

논리적인 사고 방식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고상한 정신과 장엄한 업적을 모두 살펴보아도, 진지한 판단의 빝바닥에는 여전히 문제적인 어떤 것이 남아 있다.

우리는 마음 속 싶은 곳에서 우리의 언명이 절대적으로 확정적인 것은 아님을 깨닫는다.

우리의 판단이 이처럼 동요할 때, 이 세상은 진지한 어떤 것이라는 믿음 또한 동요한다.

"모든 것이 헛되다"라는 예전의 격언 대신에, "모든 것이 놀이다"라는 더 긍정적인 결론이 우리를 압박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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