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따뜻하고 조금만 더 친절해질 일이다.

우리 모두는 어디선가 다시 만나게 된다

 

신앙인은 영원하고 참된 것을 찾지만, 학자들은 그 해석을 찾는다.

우리들의 삶에는 해석이 필요치 않다. 삶은 몸소 사는 일과 스스로 체험하는 일과 순간순간 누려야 할 일들이다.

이래서 삶은 수수께끼가 아니라 신비다.

종교적인 이론은 그 어떤 종파의 것일지라도 생동하는 삶에서 벗어난 공허한 말일 뿐이다.

그 공허한 말의 덫에서 뛰쳐나와 스스로 당당하게 살 줄을 알아야 한다.

 

배고파 밥을 먹으니

밥맛이 좋고

 

자고 일어나 차를 마시니

그 맛이 더욱 향기롭다

 

외떨어져 사니

문 두드리는 사람 없고

 

빈집에 부처님과 함께 지내니

근심 걱정이 없네                    -고려시대 원감 충지스님-

 

 

욕심이 없으면 모든 것이 넉넉하고

구하는 바 있으면 만사가 궁하다

담백한 나물밥으로 주림을 달래고

누더기로써 겨우 몸을 가린다

홀로 살면서 노루 사슴으로 벗하고

아이들과 어울려 노래하고 논다

바위 아래 샘물로 귀를 씻고

산마루의 소나무로 뜻을 삼는다   -양관의 시-

 

지난 밤에는 칠월 보름 백중달이 하도 좋아 몇 차례 자다 깨다 했다.

창문으로 스며들어온 달빛이 내 얼굴을 쓰다듬는 바람에 자다말고 깨어나곤 했다.

창문을 여니 구름한 점없는 맑은 하늘에 맷방석만한 보름달이 휘영청 떠서 묵묵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슬이 내려 앉은 전나무와 해바라기 잎에도 달빛이 반짝거렸다.

 

세월이 덧없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세월을 흘려 보내고 있다는 말이 더 적절한 듯싶다.

잠시도 멈추지 않고 밤낮없이 흘러가는 저 개울물 소리에 귀를 모으고 있으면,

아 저게 바로 세월이 지나가는 소리로구나 하고 되세기게 된다.

 

"당신의 아이들에게 가르치라.

발을 딪고 있는 이 땅이 조상들의 육신과 같은 것이라고.

그래서 대지를 존중하도록 해야 한다.

대지가 풍요로울 때 우리들의 삶도 풍요롭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사람이 땅을 더럽히면 곧 그들 자신의 삶도 더럽혀지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 또한 우리의 일부분이다."

 

수우족의 추장 '네 자루의 총'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문명인들은 뭐든지 글로 기록하며, 그래서 항상 종이를 갖고 다닌다.

그들이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니다.

워싱턴에는 그들이 우리 인디언들에게 했던 약속을 기록한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그들 중 누구 하나 그걸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다

인디언은 종이에 기록할 필요가 없다.

진실이 담긴 말은 가슴에 깊이 스며들어 영원히 기록된다.

인디언은 결코 그것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다.

그러나 문명인들의 경우는 일단 서류를 잊어버렸다 하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홀로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갖지 못한 사람은 그 영혼이 중심을 잃고 헤매게 된다.

인디언은 아이들을 키울 때 자주 평원이나 숲속에 들어가 홀로 있는 시간을 갖도록 배려한다.

그래서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한다.

문명인들은 그것을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한 인간이 이 대지위에서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반드시 필요한 자기 확인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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