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흔들려도 매일 우아하게(곽아람 지음)
새로운 사고를 접하는 기회였다.
스스로의 힘으로 오롯이 혼자 서는 것, 그게 바로 야망이라고 생각해요...
야망 따위를 갖지 않고 초연해지고, 직장에서 아무런 옥심도 갖지 않으며, 일터에서의 자아와 퇴근 후의 자아를 철저히 분리하는 것, 그리하여 회사가 나를 버리든 내가 떠나든 언제든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회사와 이별할 수 있는 것이었다. 회사에 연연하지 않으려면 최악의 경우 해고당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더라도 적어도 내 한 몸은 내가 온전히 책임질 수 있어야 했다.
마음에 어는점을 만들지 말 것, 어떠한 고난이 닥쳐와도 밑바닥까지 추해지지 않을 것, 최대한 우아함과 품위를 유지할 것, 어릴 적 읽은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에게 나는 이런 걸 배웠다.
외계가 도저히 감내할 수 없을 강도로 압력을 가해올 때,
그 버거운 삶의 순간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책을 읽는다.
"어릴 때 읽은 책은 자아의 일부분이 되거든요."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에게 굴복하지 않겠다며 더욱 더 곧고 정결한 마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모습,
그녀의 그 염결성이 어린 마음에도 무척이나 아름답고 대단해 보여서 그 삶의 태도를 닮고 싶다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어른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실례가 되겠지만 저는 어른들 중에도 마음씨가 나쁜 사람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처럼 고약한 마음에 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무리 심술을 부려도 끄떡없다는 굳은 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울리려고 하는 사람 앞에서 울면 지게 됩니다.
그럴 때야말로 생긋 웃으면서 살아갈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욕심을 내려 놓고 진솔하게,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나답게 쓸때 좋은 글이 나온다.
누가 딱히 잘못한 건 아니다. 그냥 각자의 길을 가다 보니 삶이 그렇게 흘러갔다.
한때는 밤을 새우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지만, 이제는 만나면 할 말이 없는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오래 살던 동네를 떠날 때처럼, 그 관계를 포기하는 게 무척 힘들었던 적이 있다.
노력하면 되는 건데, 노력이 부족해 소원해진 것 같아서 애써 이어가보려 해본 적도 있다. 그렇지만 소용없었다.
이제는 안다. 인연에도 유효기간이 있다. 기한이 다한 인연은 '그간 고마웠다' 인사하고 미련 없이 보내는 거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렇게 한다.
나는 아직 '그때 그 시절'의 추억에 머물러 있지만,
이제 내가 아닌 다른 관계에 몰두해 있다면 굳이 그 인연의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질 이유가 없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적 자아와 사적 자아 사이에서 갈등한다.
즉 내가 미치도록 그것이 될 것을 원했던 것으로 되는 대신에
자기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가장 의외의 방향으로 어느새 자기가 형성되어버린 것을 발견한다.
홀리스 또 "마법이 존재한다 믿었던 유년기의 주술적 사고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믿었던 사춘기의 영웅적 사고가 우리가 경험한 삶과 더 이상 일치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중간항로에 들어온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중년은 '현실적 사고'와 관점을 갖게 되며 젊음의 오만함과 자신감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라는 요구를 받는다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는 말했다.
"어린애로서, 즉 이데알리스트로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지난한 일일뿐더러 종종 카타스트로프(파국)을 가져온다.
"결국 모든 사람은 다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작고 외로운 존재야."
"우리 모두는 자신의 고독에 갇혀 있지. 인간은 누구나 외롭단다."
1999년 죽마고우 안네마리가 병으로 숨을 거둔다.
평생 외로웠고 나이 들어 더 외로웠던 이 여자는 그렇지만 순간을 충실히 살았다.
1967년 한 잡지 기자가 "환갑의 나이에 어쩌면 그토록 나이를 잊은 듯이 살 수 있냐"고 묻자 그는 답했다.
"매일을 마치 삶의 마지막 날처럼 여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늘 하루가 인생이다."
사람은 반드시 소박한 즐거움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우아함이나 박학다식처럼 온갖 화려한 유혹들에 맞서서 소박한 즐거움을 지켜야 한다.
그녀와 동류인 나는 가끔씩 생각한다.
나는 왜 스스로를 끊임없이 다독여야만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부류의 인간인가.
그 사실이 실망스러울 때도 있다.
그렇지만 "괜찮아"라고 나 자신에게 여러 번 얘기한다. 괜찮아. 넌 생각보다 강해. 괜찮아.
"불행 속에서 비로소 사람들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목소리를 높이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마라.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는 외로운 목소리가 되지 않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라.
"난 인간의 본성을 알아요.
시골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살다 보면 인간의 본성을 모르려야 모를 수 없지요."
"인간은 가여운 한편으로 아주 위험한 존재거든.
나약하고 정이 많은 살인범일수록 특히 위험하지.
나약한 사람일수록 궁지에 몰리면 두려운 나머지 잔인하게 변하고 절제를 전혀 못하니까."
"무슨 뜻인지 알아요. 나를 기억해주던 마지막 사람이 떠나고 혼자가 된 기분,
나도 조카가 있고 다정한 친구들이 있지만 어렸을 적 내 모습을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답니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를 함께 추억할 사람이 없지요. 난 아주 오랫동안 혼자로 지내왔답니다."
"자신이 누군지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그 사람의 내부에 있어요."
열여섯 살 소녀, 그날 밤 나는 그 소녀를 불렀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떠난 것이다.
그 소녀는 거울 속에 머물렀다.
그 이후에 내가 내린 결정들은 그 소녀는 내리지 않을 결정들이었다.
그것들은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이었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