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로날드 D. 게르슈테 지음)
아무리 단단한 사람이라도 질병 앞에서는 무너지고, 사라진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밖에 없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사망하기 11일 전부터 고열에 시달렸고 상복부에 짜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기원전 323년 6월 10일에 숨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계몽주의 시대 독일의 철학자이자 문학가인 요한 코트프리트 헤르더는 이런 글을 남겼다. "보라, 승리자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워야 할 때에 숨을 거두었다. 그와 함께 새로운 그리스에 대한 희망도 숨을 거둔다!"
즉위한 지 반년쯤 되었을 때 칼리굴라는 중병을 앓았고, 그 이후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다...
간질은 율리우스-클라우스 왕가의 유전적 질환으로 옥타비아누스를 양자로 받아들인 로마 황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간질을 앓았다고 한다..... 41년 1월 24일, 즉위한 지 만 4년도 되지 않아 칼리굴라는 어느 극장에서 수차례에 걸쳐 칼에 찔린 뒤 사망한다.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고고학자인 브라이언 워드-퍼킨스는 그와 관련해" 삶의 표준들이 재앙을 맞은 것처럼 무너졌고, '암흑의 시기'가 그야말로 모두를 짓눌렀다"라고 했다. 워드-퍼킨스는 <로마의 멸망>이라는 매우 인상적인 책을 다음과 같은 경고로 마무리했다. "지금 우리가 그러하듯 로마인들도 자신들의 제국이 멸망하기 전까지는 근본적인 변혁 없이도 그 세상이 그대로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현명해지고 싶다면 결코 그러한 만용을 본받지 않아야 할 것이다."
유럽 대륙에서 수많은 인명피해를 낳은 재앙은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 시작되었다. 이 끔찍한 전염병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 공격했고, 전체 인구대비 사망자 비율이 지난 2000년간 있었던 그 어떤 자연재해나 인재, 역병들보다 높았다. 5년 만에 유럽 인구의 4분의 1 내지 3분의 1이 이 질병으로 죽음을 맞아했고, 시신들 대부분은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불에 태워지거나 구덩이에 한꺼번에 파묻혔다... 쥐벼룩이 페스트의 매개라는 사실은 1894년 스위스의 의사 알렉상드로 예르생이 발견했고, 이후 페스트균은 그의 이름을 따 예르시나 페스티스'라는 학명을 지니게 되었다...페스트로 인한 사망자 수는 지역별로 매우 크지만, 역사학자들은 1347년부터 1352년까지 유럽 전체 인구 중 30페센트가 흑사병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고, 그 수는 대략 1,800만 명에 달한다고 추정한다.
1492~1493년, 제노바 출신의 콜럼버스가 이끈 탐사단에 몸을 싣고 세계를 누비던 선원들이 매독균을 유럽으로 수입해왔다는 주장은 동시대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가설이다.... 그에 반해 신대륙 원주민들 사이에 매독이 유행병처럼 번져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는 제법 많다. 과학자들이 오늘날의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8세기 매장된 시신들을 조사한 결과, 매독에 의한 골막염 증상이 발발한 것으로 보이는 시신이 6~14퍼센트에 달했다... 매독에 대한 현대적 치료제는 1909년에야 개발되었다. 독일의 면역학자 파울 에를리히와 일본의 미생물학자 사하치로 하타가 매독 치료제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살바르산이라는 약제를 개발한 것이다. 참고로 살바르산은 비소라는 독성 화학성분을 기본 재료로 사용하는 약제다.
천연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주로 발생했고, 아라비아 반도의 이슬람 문화권을 거쳐 아프리카 북부로 전파되었다. 그러던 중 910년 경, 바그다드에서 활동하던 페르시아 의사 라제스가 <천연두와 홍역에 관한 고찰>이라는 글을 발표한다. 1500년을 즈음해 유럽의 탐험가와 정복자들이 쳔연두를 신대륙으로 옮기면서 비극의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이후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아주 혁신적이면서도 안전한 천연두 예방법을 제안했다.
1883년, 콜레라의 정체가 당대 최고 세균학자의 현미경을 통해 드디어 밝혀졌다. 독일과 프랑스는 1870!\~1871년 식민지를 둘러싼 대혈투를 벌인 이후 처음으로 두 나라가 힘을 합쳐 콜레라 발병지인 이집트의 나일 강 인근 지대로 공동 연구팀을 파견했다. .. 1991년 페루에서는 콜레라로 1만 2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콜리라는 전쟁이나 기타 위기를 맞은 나라들에서 흔히 발생한다.
'독감' 혹은 '인플루엔자'로 불리는 그 질병도 1918년 봄부터 1920년까지 전 세계를 강타했다. 당시 독감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자료마다 차이가 크긴 하지만 2,500만 명에서 1억 명에 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만은 분명하다.
폐결핵은 역사시대뿐 아니라 그 몇천 년 전인 선사시대부터 인류의 조상이라 불리던 호미니드와 동물을 공격했고, 잘 알려진 고대 문명 발상지에서도 수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고대의 의사들도 폐결핵에 대해 알고 있었다. 히포크라테스도 18~35세 사이의 젊은 층들이 폐결핵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히틀러는 본디 화가를 꿈구었지만 경멸하는 바이마르 공화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정치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앞서 나온 "그러나 나는 정치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라는 비장한 문구도 그때 탄생한 것이다.
1981년 애틀랜타에 소재한 미국 빌병관리본부는 매우 희귀한 형태의 폐질환에 대한 보고서 하나를 공개한다. 폐포자충이라는 병원체에 의해 발생한 폐렴에 관한 내용이었다...미국 CDC는 심사숙고 끝에 이 질병에 '에이즈'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이기로 결정했다... 1987년 3월에는 HIV 감염 환자를 치료하는 최초의 항바이러스 약제가 미국 FDA로부터 승인을 얻었고, 뒤이어 유사한 치료제들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