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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야마구치 슈 지음)

음풍농월. 2019. 6. 10. 15:58

생각의 깊이를 더해주는 좋은 책이다.

 

교양없는 전문가야말로 우리의 문명을 가장 위협하는 존재다

전문 능력이 있다고 해서 교양이 없거나 매사에 무지해도 되는걸까?

 

우리는 왜 '철학'을 배워야만 하는가?

1. 상황을 정확하게 통찰한다.

철학을 배워서 얻는 가장 큰 소득은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깊이 있게 통찰하고 해석하는데 필요한 열쇠를 얻게 해 준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금 눈엎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라는 물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수많은 직장인과 경영자, 일반 시민들이 직시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지금 눈앞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라는 물음은 우리가 일과 삶에서 마주하는 과제들 중에 단연 가장 중요하다.

2.비판적 사고의 핵심을 배운다.

철학의 역사는 모두, 지금껏 세상에서 상식으로 인식되거나 당연하다고 여겨진 일들에 대한 비판과 고찰의 역사다..

과거 철학자들이 마주해 왔던 물음은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What의 문제'와 '그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How의 문제'

이 두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3.어젠다를 정한다.

"혁신이 정체되어 있다"라는 말이 나온 지는 꽤 오래되었는데 정체를 초래하는 가장 큰 장애 요인, 즉 병목 현상을 유발하는 요인은 아이디어나 창조성의 결여가 아니라

애초에 해결하고 싶은 과제 또는 어젠다가 없다는 사실에 있다.

혁신은 지금까지 당연했던 일이 당연하지 않게 된다는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지금까지 당연했던 일, 다시 말해 상식을 의심하는 것에서 비로소 혁신이 시작된다.

4.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과거 수많은 철학자가 동시대의 비극을 마주할 때마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고발하고 밭은 비극이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어리석음을 극복하는 방법을 고뇌하고

이야기 하고, 또 글로 남겼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그 사람들이 아니라, 실무를 다루며 매일매일 생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즉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다...

세계적인 비극의 장본인은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아돌프 히틀러도 캄보디아 킬링필드의 주범인 폴 포트도 아닌, 그들을 리더로 따르기로 선택한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열등감을 노력이나 도전으로 해소하려 하지 않고 열등감을 느끼는 원천인 '강한 타자'를 부정하는 가치관을 끌어내

자신을 긍정하려 한 사고관 이다.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도 이런 사고관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면과 맨 얼굴의 경계가 애매해진다는 모티브에 우리가 끌리는 이유는, 자기 정체성이나 인격이 실제로는 매우 취약하여 외부 환경에 따라 왜곡되기도 하고

감추고 싶었던 무의식이 표출될 염려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회사원이 가정과 직장, 그리고 개인이라는 세 가지의 인격 요소를 구분해서 생활하기가 어려워진 것과도 같은 현상이다.

물리적으로 어느 장소에 있든, 또한 어떤 사회적 입장에 있든 회사원으로서의 페르소나와 가정의 일원으로서의 페르소나가 따라다닌다.

이렇게 되면 여러 개의 사일로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 잘 살아가야 할 이류가 고대로부터 지속해 온 생존 전략 자체의 기능을 잃게 되는데,

사실 이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다.

만약 이대로 계속 흘러간다면 다다르게 될 결론은 단순하다.

여러 개로 분산되어 있는 사일로를 균형있게 유지하던 전략이 더 이상 기능을 못하고 사일로가 하나하나 쇠퇴해 간다.

따라서 마음에 들지 않는 사일로나 스트레스 수치가 높은 사일로에서부터 차츰 도망치게 된다.

 

자아실현을 이룬 사람들이 공통적인 특징

1.현실을 더욱 효과적으로 자각하고 쾌적한 관계를 유지

2.자연을 비롯해 자신과 타자를 수용

3.자발성, 단순함, 자연스러움

4.과제 중심적: 철학적, 윤리적 기본 문제에 관심이 많으며 넓은 준거기준 속에서 살아간다.

5.추월성-프라이버시의 욕구: 혼자 있어도 상처받거나 불안해 하지 않는다. 고독과 혼자만의 생활을 즐긴다.

6.자율성-문화와 환경으로부터의 독립.능동적 인간: 비교적 생리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에서 독립해 있다.

7.언제나 새로운 인식: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항상 신선하고 천진하게 인식하고 경외와 기쁨, 경이로움과 황홀감을 느낀다.

8.신비로운 경험-최고이 체험: 황홀감과 경이로움과 외경심을 동시에 가져오는 굉장히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 일어났다고 확신한다.

9.공동체 의식:때로는 인류에게 화가 나거나 조바심이 나거나 싫증이 날대도 있지만 그들에게 동정과 애정을느끼며 도움을 주고자 한다.

10.대인관계: 마음이 넓고 깊은 대인 관계를 유지한다. 소수의 사람들과 특별히 깊은 유대 관를 맺고 있다. 이는 자아실현적으로 매우 친밀해지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

11.민주적인 성격 구조

12.수단과 목적의 구별, 선악의 구별

13.철학적이고 악의 없는 유머 감각

14. 창조성

15.문화에 편승하기를 거부

 

우리는 신념이 행동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인과관계는 그 반대라는 사실을 인지 부조화 이론은 시사한다.

외부 한경의 영향을 받아 행동이 일어나고 나중에 그 행동에 합치되도록 의사가 형성된다.(생물은 생존을 위해 행동이 대부분 앞선다)

다시 말해 인간은 합리적인 생물이 아니라 나중에 합리화를 도모하는 생물이라는 것이 페스팅어가 내놓은 답이다.

 

이 '반취약성'을 조직론이나 경력론에 적용해 생각해 보면 어떤 깨달음이 있을까?

우선 조직론에 적용하자면 의도적인 실패를 설정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스트레스가 적은 상황일수록 시스템은 취약해지기 마련이므로 언제나 무너지지 않을 정도의 스트레스를 일정하게 가해야 한다.

그 실패가 학습을 독려하고 조직의 창조성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큰 조직에서 근무하며 그 안에서 줄곧 지내다 보면 자신의 기술이나 지식 같은 인적 자본과 인맥과 평판, 신용 등의 사회 자본이 대부분 기업 내에 축적된다.

그런데 이러한 인적 자본과 사회 자본은 그 조직 사회를 떠나게 되면 그 가치가 크게 떨어진다.

즉 사람을 하나의 기업으로 생각할 때, 이 사람의 대차 대ㅔ조표는 그 회사에서 나오는 순간 극히 취약해지고 마는 것이다.

 

환경에 더 적합한 개체가 살아남는다는 자연도태의 매커니즘에 가장 중요한 열쇠는 '적응력의 차이는 돌연변이에 의해 우발적으로 생겨난다'는 점이다.

돌연변이라는 비예정조화적인 변화가 적응력의 차이를 생성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깊다.

이 사고 방식은 일종의 에러가 일어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에러'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는 배제하려 한다.

하지만 자연도태의 매커니즘에는 에러가 필수 요소로 내재되어 있다.

무언가 긍정적인 에러가 발생함으로써 시스템의 성과가 향상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20~30대는 '회사는 언젠가 배신한다', '결국 의지할 것은 가족밖에 없다'라고 생각하고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는 경향이 다른 세대보다 강하다는 사실이 통계로 밝혀졌다.시제로 일본에서도 이른바 마일드 양키라 불리는 새로운 계층이 도쿄같은 도시에서 출세하는 것보다 자신의 고향에서 가족, 친구들과 함게 있는 것을 선호하는 것을 보면 좁은 범위의 인적 자본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반면 도시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에 역행하는 '가족의 붕괴'현상이 나타나 양극단적인 흐름이 혼재하고 있다.
일이란 실제로 해 보지 않으면 재미있는지, 그리고 잘하는지 결코 알 수 없다.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며 망설이다가는 우연찮게 찾아온 기회마저 놓치고 말 우려가 있다...."의지가 되는 것은 사태의 변화를 인식하는 센스, 우연에 대한 직감, 그뿐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내가 <세계의 리더들은 왜 직감을 단련하는가>에서"축적형 이론 사고보다 대담한 직감이 중요하다"라고 지적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주위에서 아직 괜찮다고 안심시키더라도 스스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도망처라.이때 중요한 것은 위험하다고 느기는 안테나의 감도와 도망칠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용기다.사람들은 으레 착각하고 하는데, 도망치는 것은 용기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용기가 있기에 도망칠 수 있는 것이다.
공평이나 공정과 정반대에 있는 차별이 이질성에 이해서 생겨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차별이나 격차는 우리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동질성'이 높기 때문에 발생한다.
모든 것이 거의 평준화될 때 인간은 최소의 불평등에 상처받는다.평등이 커질수록 항상 평등의 욕구가 더욱 크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세상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그러한 세상에서 한층 더 공정한 세상을 목표로 싸워 나가는 일이 바로 우리의 책임이요, 의무다.남모르는 노력이 언젠가는 보상받는다는 사고가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우리는 언어를 사용해서 사고한다. 당연한 말이다.하지만 그 언어 자체가 이미 무언가의 전제에 따라 달라진다면 어떻겠는가?언어를 이용해 자유롭게 사고해야 하지만, 그 언어가 의지하고 있는 틀에 사고를 의지하게 된다.그러면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롭게 사고할 수 없고, 그 사고는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무언가의 구조에 의해 불가피하게 큰 영향을 받게 된다.이것이 구조주의 철학의 기본 입장이다.
우리는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틀에 의해서만 세상을 파악할 수 있다.그리고 한층 더 정밀하게, 미세한 메스실린더를 이용해 계량하듯 세상의 현상과 이치를 파악하려 한다면, 언의 한계를 인지하고 더 많은 언어, 즉 시니피앙을 조합함으로써 정밀하게 시니피에를 그려 내려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