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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의 감각, 초연결 지능(조슈아 쿠퍼 라모 지음)

음풍농월. 2018. 11. 10. 21:33

충격을 준다.

그리고 그 충격을 통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지은이 목적이 그러하리라 생각된다.


중국인들은 어떤 문제에 닥쳤을 때 변화만이 영원하다는 생각으로 해결을 시도한다.

문제들은 대부분 결코 사라지지 않고 모습만 바뀔 뿐이다.

승리는 무한하게 지속되지 않는다. '완료'된 상태란 결코 없다.

세상이 끝없이 변하기 때문에 서양의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실들에 관한 전문 지식뿐만이 아니라 직관력을 일깨우는 훈련이 필요하다.


중요한 점은,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을 동시에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실재하는 것을 감지하는 능력과 가상의 힘들을 인식하는 능력 모두 증요하다.


세상을 보는 진정으로 새로운 방식, 즉 새로운 본능을 훈련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평정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느린 대화와 끈질긴 탐구를 통해서 대상을 가장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정의나 진리 혹은 미에 대한 새로운 본능이 탄생하려면 정신의 구조가 달라져야 하는데, 그것은 느린 사색으로 가능한 것이다.


제7의 감각은 간단히 말하자면, 어떤 사물이 연결에 의해 바뀌는 방식을 알아채는 능력이다.


프로그래밍을 잘 안다고 해서 컴퓨터가 영향을 끼칠 시스템들을 잘 아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프로그래밍에 통달했다고 과학에 통달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절대 그런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키보드 앞의 프로그래머가 세상이 너무도 쉽게 프로그래밍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바이젠바움은 프로그래밍이 "무언가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 뒤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기까지의 긴 기다림을 견뎌낼 만큼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가장 매혹적이다"라고

경고했다.


우리는 아주 인간적이어서, 혼란스러울수록 기존의 생각에 믿음을 품고 더 집착한다.

우리는 기존의 생각들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늘 작동해왔으니까 계속 작동할 것이라고 믿는다.

실제로 제로 위험 부담이 더 크고 중요한 일일수록 기존의 생각을 버리기가 더 어려운 법이다.


현재의 체제가 당신에게는 가장 안정된 것처럼 보인다.

당신도 언젠가는 그 체제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날은 아주 멀리 있는 것 같다.

당신은 개혁을 미룬다. 뒤를 이을 아들을 준비시킨다.


연결된 시스템에서의 권력은 극심한 집중과 엄청난 분산으로 특징지어진다.

단순한 이분법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오래지 않아 권력과 영향력은 봉건시대보다 더 집중되는 동시에 민주주의 전성기보다 더 분산될 것이다.


장치가 많을수록 핵이 더 강력해져야 한다.

분산과 집중이 오늘날 권력의 본질이다.


제7의 감각은 권력이 어떻게 재편성되는지를 감지하는 직관적인 느낌이다.


"기술에 더 많이 의존할수록 기술 내부의 작용을 더 많이 연구하고 밝혀야 한다."..

우리의 안보, 자유, 건강을 장치들과 장치들을 만든 사람들에게 맡겨놓았으니, 우리는 그 시스템의 심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이 그저 연결되어 있지만은 않다. 모든 것이 감시당하고 있다. 기억된다. 연구된다.

그러니 연결된 시대의 대부분을 작동시키는 코드,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에 대해 주의 깊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구글이나 인텔 혹은 비트코인이 정말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는 사람은 수십 명에 불과하다.

컴퓨터가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는 사람들, 원자 수준의 해킹으로 백도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소수의 엘리트다.

연결은 사물의 본질을 바꾸면서, 그 연결을 통제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높은 수준의 권력과 영향력을 준다.


"사방에 바다 말고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 있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세상에 대해,

세상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 참되게 인식할 수 없다."


당신은 매일 아침 깨어나 지구상의 누구도 겪은 적이 없는 완전히 유일무이한 상황에 있다.

그것은 정해진 사실도 아니고 절차도 없다.


컴퓨터 코드 설계에 관한 결정, 검색 알고리즘, 디지털 통화의 구조, DNA  교체 규칙, 이 모든 것이 새로운 카스트에 의해 만들어질 것인데,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고 규제를 가하는 기계와 기업, 정부 외부에서 주로 활동한다.

몇 년 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우리 삶에서 일어날 가장 중요한 일들은 은밀하게 일어날 것이다.

나의 그때의 충격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문명이 개인과 극소수의 의지에 의해 세워진 얇고 불안정한 부스러기에 불과하며,

교묘하게 수용되고 교활하게 보존된 규칙과 관례에 위해서만 겨우 유지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우리는 전통의 지혜나 관습의 규제를 존중하지 않았다."


"문명 자체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주의 집중하는 시간이 애처롭게도 짧아지고 있다."

그 시계의 선언은 이렇게 시작했다.

"우리가 제안하는 것은 메커니즘이면서 신화다."

롱나우 시계는 우리에게 장기적인 사고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사실 오늘날 이 시대의 순간적인 현재성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속도로 도시를 알아본다. 무질은 중요한 것을 지적했다.

즉, 속도가 인식에 영향을 준다.

언덕을 오를 때 인식하는 것,

예를 들면 귀뚜르르 우는 벌레들, 작은 돌멩이, 언덕의 색과 경사도의 변화는 똑같은 언덕을 차로 올라갈 때 인식하게 되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두 경험이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연결된 시대에 인생은 즉각적이고 거의 항상 켜져 있다.

그래서 더 편안했던 과거의 속도 감각이 파괴된다.


특히 시간은 애석하게도 타협할 수 없는 인생의 본질적인 조건이다.


"언어는 인간 이성의 도구이지, 단순히 생각 표현의 매체가 아니다."


우리의 현대적 삶과 과거 사이의 변화를 가장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은 단연 속도가 빨라지고, 기다리는 일이 줄어들며, 경험을 즉시 할 수 있게 된 일상의 출현이다.


속도는 특히, 오래된 습관과 생각을 파괴한다.


즉 빠른 것이 경쟁 우위다.

그리고 더 빠른 것은 결정적 우위다.

절대 속도는 절대 권력이다.


시간을 지배해야 한다.

당신의 시간과 적의 시간을 지배해야 한다.

이것이 힘을 결정지을 것이다.


"약자와 강자 사이에 평등은 없다."라고 이탈리아 역사가 잠바티스타 비코는 지적했다.

우리 시대도 마찬가지다. 빠른 것과 느린 것 사이에 평등은 없다.

공간과 시간을 가장 잘 압축할 수 있는 사람 국가, 사업, 그리고 '이동 엘리트'들이 부와 기회를 잡는 데 있어 점점 더 놀랄 만큼 유리해질 것이다.


'원주민들'이 결코 건널 수 없는 산업과 과학과 이성의 커다란 격차가 있었다.

로즈가 고백한, 될 수 있는 대로 '세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려는 야망은 칸트의 "감히 알려고 하라!"가 무기를 들고 탐욕스러워진 모습이었다.

답할 수 없는 질문은 없는 것 같았고, 너무 멀어서 착취하지 못할 곳도 없었다.

한 나라는 역사나 거리, 혹은 감정으로 지켜지지 않았다.


"힘을 가진 사람이 지배하는 것이 힘의 본성이다. 힘을 가지지 않은 자는 복종해야 한다."


"중국인은 무언가 하고자 할 때 그 시대의 본질이 무엇인지 먼저 묻는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서양인들은 목표를 먼저 묻는다. 달성해야 할 목표가 무엇인가?"


시대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우앙우아의 질문이 모든 일에 가장 본질적인 것이다.

본질을 잘못 이해하면 그것과 연관된 결정들도 모두 소용없어 진다.....

행동에 착수하기 전에 사람이나 정책 혹은 획기적인 변화에 관해 내리는 판단은 중요하다.


"사람은 사건들에서 울려나오는 신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신의 외투 자락을 잡으러 튀어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게 전부다."

유럽 정계 거물인 비스마르크가 여기서 고백하고 있는 것은 안정과 힘의 진짜 비결이 역사의 힘을 아는 데 있다는 것이다.

계몽주의, 과학, 산업, 국가주의, 기술, 그 힘 말이다.


새로운 생각하는 기계들은 지식 이상의 것을 가지게 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심오하고 불가해한 지혜를 소유하기 시작할 것이다.

인간이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정말로 기적적인, '사고'와 사상의 게이트랜드에 거주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다.


네트워크 연결은 미래에 우리 목숨을 구하는 확실한 수단이 될 것이지만 끔찍한 새 무기들의 기원이기도 할 것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미래는 단순히 연결된 세상이 아니라, 점점 빨라지는 연결된 세상이다.


"AI는 프로그래밍으로부터 자유인 동시에 이해로부터도 자유이다"라는 말이 이 역석적 상황을 잘 요약해준다.


자신이 애석하게도 "너무 일찍 태어나서" 쏟아지기 시작한 과학혁명의 성과인 이성의 열매를 따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당신과 나는 "너무 늦게 태어나서" 순수하게 인간적인 인식의 시대에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낡은 미신과 무지 때문이 아니라 기계 때문에 과학의 진짜 해답을 알 수 없는 새로운 시대로 다시 진입하고 있는 것 같다.

기계들은 과학이나, 우주, 혹은 우리들 모두에 대한 진실을 알지만 우리는 그것들이 어떻게 해서 답을 찾았는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지혜가 바른 판단과 끊임없는 데이터로 완벽해져서 결국에는 인간 활동 대부분을 훨신 뛰어넘으리라 생각했다.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이 진보를 추진할 때, 그 진보는 훨씬 더 빨라질 것이다.

사실 진보가 훨씬 지능적인 존재를 낳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 같다. 그것도 훨씬 더 짧은 기간 내 말이다."


"이 기계들의 지적 활동 중에 기계의 설계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초지능 기계는 훨씬 더 나은 기계를 설계할 수 있다.

그러면 분명히 '지능 폭발'이 일어날 것이고, 인간의 지능은 훨씬 더 뒤처질 것이다....

그래서 최초의 초지능 기계가 자신을 지배하는 방법을 인간에게 순순히 말해준다면 그 기계는 인간이 만들 필요가 있는 마지막 발명품이 될 것이다."


초지능 기계란 즉, 우리를 제거할 상자다.


AI는 사실 미끼다.

굶주린 우리는 그것이 인간의 고통을 없애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덥석 물지만 낚이고 말 뿐이며 머지않아 잡아먹힌다.


"우리는 초지능 기계가 지혜와 지능 개발과 관련해 인간과 같은 지점에 최종 가치를 두고 있다고 태평스럽게 믿어서는 안된다"라고 보스트롬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