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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나메, 왕의 책(아볼 카셈 피르디우시 지음)

음풍농월. 2018. 3. 25. 14:01

이 책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루스템의 죽음이 단언코 책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말 할 수 있다.

잘의 궁정에 있던 아름다운 여자 노예에게 태어난 슈그닷.

루스템에게 조공을 바치던 카불 왕은 사위인 슈그닷과 함께 루스템을 죽이기로 모함하였다.

카불 왕인 연회를 열어 슈그닷을 모욕하고, 슈그닷은 이를 형인 루스템에게 전하여 카불 왕을 치도록 한다.

카불 왕은 용서를 구하는 연회를 베풀고 돌아가기 전에 사냥을 하자고 부추긴다.

그들은 루스템을 미리 파놓은 구덩이 쪽으로 길을 안내했지만 라쿠쉬가 갈아 엎은 흙냄새를 맡고 나아가지 않으려 한다.

루스템이 채찍으로 후려쳐서 말은 앞으로 전진하게 되고 구덩이 빠진다.

날카로운 창이 말의 몸을 뚫고 들어가 몸을 찢었고, 루스템의 몸도 창에 꿰뚫렸다.

루스템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을 때 음모를 계획한 슈그닷과 카불왕의 얼굴이 보였다.

루스템은 마지막 부탁으로 화살 두 대를 앞에 놓아두라고 요청하였다. 죽지 전에 사자가 와서 잡아 먹을까봐 그런 요청을 한다고 했다.

슈그닷은 요청을 들어주고 나무 뒤로 달아났으나 루스템은 그가 어디에 숨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화살을 쏘았고 사악한 슈그닷의 심장을 꿰뚫었다.

"자비로운 신이여, 감사합니다. 내 평생 신을 섬기며 살았더니 아직 나에게 숨이 남아 있을 때 나를 해친 몸쓸 인간에게 앙갚음을 하도록 해 주시는군요."

이말을 마치고 그는 숨을 거두었다.


"세상에 어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까? 삼척동자도 알만한 일 아닙니까?

폐하는 귀신에게도 홀리고, 바람만 불어도 마음이 오락가락하는군요.

벌써 세 번이나 재앙에 휘말렸으니, 백성들이 어찌 폐하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쓸데없는 자만심에 들뜬 왕이 하늘에 올라가 보려고 했다는 사실은 이란의 역사가 지속되는 동안 수치스러운 일로 남게 될 것입니다.

폐하의 조상들을 생각해 보시고, 그분들의 발자취를 따라 공정하게 나라를 다스리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된 것은 내 잘못이에요. 이후로 사람들은 젊은 사람이 패배했다고 조롱하겠지요.

하지만 나는 헛된 영광을 얻으려고 한 게 아니라, 내 아버지를 찾으려고 서둘렀던 것이에요.

어머니가 나에게 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는 표시를 알려 주었고, 나는 아버지를 만나려는 열망을 좇다가 죽는 것이지요.

이제 나의 고통은 헛된 것이 되었지요. 아바저의 얼굴을 볼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으니까요.....

내 아버지는 펠리바 루스템이니, 내 아버지에게 그의 아들 소랍이 아버지 얼굴을 보고 싶어 모험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주세요."

순간 루스템의 손에서 칼이 미끄러졌다. 그는 절망에 몸부림쳤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비탄의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아들 옆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는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느끼면서 통곡했다.


바흐람이 말했다. "그럼 그대는 사이야우쉬의 아들 피루드가 틀림없구나."

파루드가 대답했다. "그렇다. 나는 쓰러진 삼나무의 가지이다."...

"만약 투스가 왕자님의 뜻을받아들이면 제가 다시 오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오면 절대로 그 사람을 믿어서는 안됩니다."


루스템이 말했다.

"내가 잘의 아들로 이 세상에 태어난 지 600년이 흘렀네.

그동안 나는 세상의 펠리바로 살았고, 세상에 한 점 부끄러운 일은없네.

그대는 왕이고, 왕들은 머리를 높이 치켜들고 있는 게 주된 일이긴 하지만, 그대는 이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지나간 일들은 잘 모를게 아닌가."


왕들의 책, 샤나메는 창세부터 이슬람이 폐르시아를 정복하기 전까지 기간 동안 이란의 건국신화와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아랍의 지배가 시작될 즈음인 1010년, 이란의 시인 피르다우시가 삼십 오년에 걸쳐 6만행에 이르는 폐르시아어 대구 형식으로 완성시킨 사시시이기도 하다....

샤나메는 폐르시아 세밀화로 화려하게 장식한 삽화본이 다수 전승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휴톤 판과 대몽골 판이 유명하다...

샤나메를 이해하려면 그 정신적 배경이 되고 있는 폐르시아의 고대 신앙 조로아스터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조로아스터교는 폐르시아의 철학자 조로아스터가 창시한 종교로 알려져 있다.

그 교리를 살펴보면, 세상의 악은 아후라 마즈다의 쌍둥이 알들이 자신들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성향에 의해 영원한 경쟁관계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쌍둥이 가운데 하나인 스펜타 마이뉴(자애로운 영)는 선을 선택하여 진리-정의 -생명의 속성을 얻는다.

또 다른 하나인 앙그라 마이뉴(파괴의 영)는 파괴-불의-죽음의 힘을 얻게 되는 악을 선택한다...

후기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적 우주론에서는, 세계의 역사를 빛에 고하는 오르마즈드와 그 아래 어둠에 거하는 아리만의 투쟁으로 인식한다.

결국 아리만은 물질 세계에서 승리를 거두지만, 오르마즈드가 만든 함정을피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를 파괴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샤나메에서 다루는 이야기들은 역사를 오르마즈드(성과)과 아리만(악)의 투쟁과 대결이라는 이원론적 관점으로 해석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사냐메에 기록된 역사는 피슈다디왕조, 카야니왕조, 아슈카니왕조, 사산왕조 등 네 왕조의 이야기며, 그 내용도 단순히 왕들의 행벅에 국한 된 게 아니라

영웅 이야기, 사랑 이야기, 전쟁 이야기, 모험 이야기 등 다양하고 방대하다....


사악한 왕 조학과 황소가 키운 폐리둔의 대결을 다룬 이야기다.. 조학은 아리만의 꾐에 넘어가 자기 아버지를 속여서 살해하고 스스로 왕이 된다...

아리만이 조학의 어깨에 입을 맞추자, 양 어깨에서 각각 검은 뱀이 한 마리씩 솟아올랐다...

이 폭정을 끝내기 위해서 세상에 나타나는 영웅이 폐리둔이다.

폐리둔의 아버지는 일찍이 조학의 뱀에게 희생되었고, 어머니는 아들을 황소에게 보내 양육을 맡긴다....

샤나메의 많은 이야기들은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지혜로운 왕도 자만심에 사로잡히면 순식간에 세상을 살육과 투쟁으로 얼룩진 전쟁터로 만들 수 있으며,

탐욕에 사로잡혀 내뱉은 한 마디의 사악한 거짓말이 일세를 풍미한 영우을 처참하게 멸망시킬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자만심과 허영, 그리고 탐욕에 물들어 저질러지는 거짓과 속임수는, 샤나메에서는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악으로 규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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