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내지 않기 혹은 사라짐의 기술(피에르 자위 지음)
오랫만에 철학책을 접하니 어렵다.
포켓 형태로 작은 사이즈에 페이지도 작아서 가볍게 시작했는데 고난에 부딪힌 셈이다.
하지만 그냥 앞으로 전진했다.
나중에 또 기회가 올거라는 희망으로.
드러내지 않기는 찰나의 순간에 의미가 있으며 언제든 우리는 현재로 돌아가서 드러내고 현실에 적극적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드러내지 않기는 도피가 아닌 사랑의 한가지 표현에 해당한다.
세상에 초대받았을 때 그저 별 생각없이 순진무구하게 문지방을 넘고 계단을 올아왔음이 분명하다
상념에 푹 빠진 나머지 자신이 그런다는 것도 거의 깨닫지 못한 채, 그저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해서 그래야만 한다는 듯이 행동할 뿐이다 -카프카, 카프카 일기-
언제고 아이들 방문을 살그머니 열어보라. 아이들이 방 한쪽에서 조용하고 진지하게 노는 모습을 지켜보라.
거기에는 어른들의 격려나 평가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아이들은 아유로워 보이기도 하고 자기들끼리만 뚝 떨어져 있는 듯하기도 하다....
그들은 당신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누군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지각없이 순전히 놀이에 또는 잠에 빠져서 스스로 즐거움을 얻고 있다.
그러다 문득 당신이 있는 것을 알아차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허영심 가득한 자아가 얼굴을 드러내고 인정을 갈수하며 관심을 끌려는 일상의 서커스로 되돌아 올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특별한 그 무엇이 있다.
다시 오지 않을 사랑스러움의 순간, 강렬하지는 않지만 비할 데 없이 평온한 순간, 그런 순간에 우리는 맨 먼저 무엇을 느낄까?
'드러내지 않기'에서 느낄 수 있는 기쁨은 찰나에 누릴 수 있는 기쁨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도 그 기쁨이 언제까지나 지속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찰나의 시간에 느끼는 찰나의 기쁨
재치 넘치고 신중한 영혼들을 상대하면서 상처받지 않으리라는 확신은 가져도 좋다.
그러나 과연 진심으로 사랑받고, 도움받고, 이해받을 수 있을지는 결코 확신할 수 없다.
사물은 본연의 모습이 아니라 보이는 모습으로 통하는 법이다.
세상사의 중심에서 만사를 존재하게 내버려둔 채 고통받지도 않고 외면하지도 않으면서 거칠 것 없는 공백의 삶을 산다는 경이로운 경험 말이다.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드러내지 않기이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방 안에서 한 시간도 조용히 쉴 줄 모르는 데서 빚어진다. -파스칼-
우리는 불연속적으로 사유하고 행동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경험은 불완전하지만 생상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불연속이 존재한다고 애초에 알고 있는 것 같다..
실재를 상대하려면 불연속을 경유할 수밖에 없고 끊임없이 불연속으로 돌아가야만 한다고 우리를 일깨운다.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심오한 내면생활을 위해서 세계와 타자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둘러싸고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
좋고 나쁜 일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유연성이란 끊임없이 자기를 포기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만 그 포기는 어디까지나 일시적이다.
포의 단편소설 <군중 속의 사람>
사르트르 <닫힌 방>
엘리아스 <궁정사회>
그리시안<실천적 지혜의 기술에 대한 개괄적 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