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들/책에 있는 글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이탈로 칼비노 전집)

음풍농월. 2017. 10. 8. 13:59

어려운 소설이다.

완성되지 않은 소설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책의 주인공이자 남성 독자가 '중단된 열 편의 소설'을 찾아 나서는 탐색과정이 소설의 줄거리를 형성한다.

내가 독서를 하는 것인지, 책에 등장하는 독서를 하는 사람은 이리 얽히고 저리 얽힌다.


어느 부분에서는 몇 줄을 반복적으로 되풀이 한다.

마치 카세트 테입에서 특정 부분을 반복하는 듯하다.

이 부분에서 하나의 글귀가 떠올라 책에 급히 적어본다.

"생각해 보니, 왜 그렇게 급하게 살았는지 싶다.

시간은 넘쳐나고 할일은 없다.

이럴 땐 생각나는 것들을 하면된다.

계획에 짜여 있던 하루는 사라지고 헝클어져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세상으로 떨어지는 느낌"


쿠드지바의 우리 부엌은 언제든, 자신을 위해 요릴할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 마음껏 모일 수 있도록 일부러 크게 만든 것처럼 보인다.

이집트 콩 껍질을 벗기는 사람도 있고 잉어를 소금에 절이려는 사람도 있다.

모두 무언가에 양념을 하거나 조리를 하거나 먹고 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몇 사람이 떠나면 또 다른 사람이 온다.


우린 어릴 때부터 읽는 법을 배우고 평생 눈앞에 던져진 글의 노예로 살았쟎아.

나도 처음에는 읽지 않는 법을 배우기 위해 제법 노력해야 했지만 이제는 정말 자연그러워.

비결은 쓰인 글을 보는 걸 거부하지 않는 거야. 아니, 그 글자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뚫어지게 바라보는 거지.


세상이 내게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메시지와 경고와 신호를 보내고 싶어 한다는 확신이 든다.


눈에 비치는 모든 것에 의미가 가득 담긴 것처럼 보이는 날들이 있다.

전해진 메시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정의하고 단어로 번역하기 어렵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내게는 결정적으로 보인다.

그것들은 나, 그리고 동시에 세상과 관련된 일들을 알리거나 예언한다.


반면 나는 매일 내 앞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나를 향한 세상의 의도를 읽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이러한 사건들 속에 숨어 있는 어두운 암시의 무게를 적합한 어휘로 옮기기 위해 고심한다.


"수요일마다 좋은 냄새가 나는 젊은 아가씨가 100크라운짜리 지폐를 슬쩍 준다니까. 죄수와 단둘이 있게 해 달라고 말이야.

그런데 목요일이면 그 100크라운이 어느새 엄청난 맥주 값으로 다 사라져 버리는 거야.

면회 시간이 끝나면 그 아가시는 고급스러운 옷에 감방 냄새를 묻히고 면회실을 나가지.

죄수는 죄수복에 아가시의 향기로운 냄새를 묻힌 채 감방으로 돌아가고. 그리고 난 맥주 냄새를 맡으며 여기 있지.

사는 건 그저 냄새의 교환이라고."


감옥은 유한한 나의 육체이고, 거기서 탈출하기를 기다리는 건 영혼이며, 저승에서 삶이 시작될 거라는 생각을 하자 전율이 일었다.


"읽는다는 것은 항상 이런거라오.

거기엔 글로 쓰인 것, 변화할 수 없을 만큼 견고하고 물질적인 것, 그리고, 이것을 통해 존재하지 않는 어던 것과 비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하지요.

생각이나 상상만 할 수 있기 때문에, 혹은 존재했는데 지금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비물질적이고 비가시적인 세계의 일부분을 이루는 다른 어떤 것,

지나가고 사라져 버려 도달할 수 없는 것, 죽은 자들의 세계에 있는....."


모든 이야기의 결론은 한 사람이 산 인생은 하나라는 것이다.

유일하고, 균일하며, 실 한 올 하나 빠져나올 수 없는 펠트 담요처럼 치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