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기차위에 중립은 없다(하워드 진 지음)
조선소의 노동자, 제2차 세계대전의 폭격수, 제대 후에는 컬럼비아 대학에 입학해 박사학위를 수여하고 흑인들만 다니던 스펠먼 대학에서 역사 강의.
이것이 하워드 진의 간략한 이력이다.
뒤에 물론 크게 붙는 것이 바로 시민 운동가이다.
60년대 흑인 분리주의의 개선과 베트남 전의 반대 운동이 이책 전체에 소개된다.
그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하다.
최악의 순간에서조차 그가 희망을 갖는 이유는 우리 사는 세상에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자그만한 행동을 옮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자그만한 행동들이 모여서 세상을 변화시킴을 증거로 보여준다.
이책을 읽는 내내 우리들 각자가 세상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는 그 혜택에 감사함이 솟구쳐왔다.
국가에 대한 맹세를 거부할 때면 거듭해서 등장하곤 하는 애국심의 문제, 조국에 대한 충성의 문제였다...
민주주의를 신봉한다는 것은 [독립선언서]의 원칙들- 정부는 인위적인 창조물로서 모든 사람이 사람과 자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인간은 폭넓은 특질을 보여 주지만, 보통 이 중 최악의 것만 강조되며 그 결과 너무나도 자주 우리는 낙담하고 용기를 잃게 된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건대, 용기는 결코 꺽이지 않는다. 역사는 거대한 적과 맞서 자유와 정의를 위해 함께 싸워 긍리한 사람들의 얼굴로 가득 차 있다....
정의를 위한 이러한 싸움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가 바로 인간이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순간에도 남들과는 달리 아무리 작은 일이지만 무언가를 행하는 인간이다.
사람들은 경험이 풍부하다. 그들은 변화를 바라지만 무력하고 고독하다고 느끼며, 다른 것들보다 웃자란 잔디 잎사귀가 되어 잘려 나가길 원치 않는다.
다른 누군가가 첫 번째나 두 번째로 움직여 신호를 보내길 기다리는 것이다.
결국 내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나는 희망을 고집한다.
이건 물론 느낌일 뿐이다. 하지만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느낌을 존중하지만 그럼에도 이유를 원한다.
계속 나아가야 할 이유, 굴복하지 말아야 할 이유, 개인적 사치나 절망으로 물러서면 안되는 이유를.
사람들은 내가 말한 인간행동에서 그러한 가능성의 증거를 보고 싶어한다.
언론은 정치인들이 그러하듯이, 너무 커져서 무시하지 못하기 전까지는 반란에 주목하지 않는다.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오래 지녀 온 습관을 버리고 상황에 적응하기 마련이다.
전쟁은 폭력에 맞서, 잔인함에 맞서 선한 대의처럼 보이는 것을 위해 수행될 수 있지만, 전쟁 자체는 폭력과 잔인함을 증폭시킬 뿐이다.
파리에서 4년 동안 협상하고, 5만5천명의 미국인과 백만여명의 베트남인이 죽고, 역사상 큰 강대국이 작은 나라에 가한 가장 맹렬한 폭격이 끝나고,
군사적 승리가 실패로 돌아간 후, 미국은 1973년 초에 북베트남과 철수에 합의하는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나로서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비행대의 일원이었던 한 폭격수가 이제는 폭탄 세례를 받는 입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수행한 작전이 기억나면서 뱃속이 팽팽해지는 느낌이 왔다.-두려움 이었다.
나는 속으로 이런 일을 당해도 싸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희망을 잃지 않으려면, 바로 이러한 장기적인 변화를 반드시 응시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비판주의는 자기 충족적인 예언이 된다. 그것은 우리의 행동 의지를 무력하게 만듦으로써 자기 자신을 재생산한다.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에 보는 것을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잇다.
우리는 금세기에만도, 갑작스러운 제도의 몰락과 사람들 사고의 비상한 변화, 폭정에 맞선 반란의 예기치 못한 분출, 결코 무너뜨릴 수 없는 것처럼 보였던
권력 체계의 신속한 붕괴로 인해 얼마나 자주 놀라게 되었는지를 잊고 있다.
정치권력은 그것이 아무리 엄청나더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허약하다.(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소심한지를 유념하라)
평범한 사람들은 얼마간은 겁을 먹을 수 있고 농락당할 수 있지만 가슴속 깊이 상식을 지니고 있으며, 조만간 그들을 억압하는 권력에 도전할 길을 찾게 된다.
혁명적 변화는 한 차례의 격변의 순간으로서가 아니라 끝없는 놀람의 연속, 보다 좋은 사회를 향한 지그재그 꼴의 움직임으로 오는 것이다.
변화의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거대한 영웅적 행동에 착수할 필요는 없다.
작은 행동이라도 수백만의 사람들이 반복한다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좋지 않은 시대에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단지 어리석은 낭만주의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가 잔혹함의 역사만이 아니라, 공감, 희생, 용기, 우애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역사가 잘못 흘러가고 있을 때 중립을 지키는 것은 그 잘못에 동조하는 행위입니다.
역사의 진보가 이뤄지고 부당한 질서가 무너진 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으로 행동할 때 가능했다.
권력에 있는 자들이 우리의 요구와 주장을 외면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 바로 이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