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 관한 모든것(다나엘 레히티 지음)
기억이 의미하는 것, 그리고 기억을 향수하는 것.
인간에게 있어서 향수할 기억이 있다는 것은 과거의 아름다움과 미래를 위한 격려로서도 큰 의미가 있다.
이 책은 향수가 인간에게 왜 중요한 것인지 자세히 논리적으로 다룬다.
기억이 당신에게 주는 모든 것을 알고 싶다면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자기만의 기억이 있는 사람은 온 세상을 가진 사람보다 더 부유하다. - 키르케고르 -
"향수가 우리 인생 전체를 좌우한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10년을 보낸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데는 또 10년이 걸렸다.
그는 바다에서 3년을 떠돌아 다녔고, 7년 동안 아름다운 여신 칼립소에게 잡혀 있었다.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에게 죽지도, 늙지도 않게 해주겠다며 남아 잇으라고 제안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오직 귀환만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귀환이 그리스어로 nostos다.
오디세우스는 거절의 대가로 고통을 참아내야 했는데, 그 고통이 그리스어로 algos이다.
따라서 향수(노스텔지어 Nostalgia)는 '귀향의 고통'을 뜻한다고 보면 된다.
요하네스 호퍼는 안성마춤인 단어를 찾아냈다.
바젤의 대학생과 시골의 여자 농부 그리고 파리의 하인이 앓은 병을 그는 '향수병 nostalgia'이라고 이름지었다.
향수가 주는 메세지는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이다.
인간은 항상 현재 갖지 못한 것을 열망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추억의 장난이다.
우리는 예전의 삶이 더 쉽고 더 유쾌하며 걱정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조건부로 맞는 말이다.
우리가 중고생이든 대학생이든, 노동자든 연금 생활자든, 인생의 어는 단계에 와 있든 우리는 종종 삶의 모든 단계에서 과거가 더 매력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향수는 두려움과 불안, 방향 상실이 지배하는 시대에 나타나는 증상이다.
그리고 향수는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쫓아내는 일종의 정신적인 약이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우리가 소중하게 보고나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열어보는 보물상자와 같다. 매우 인간적인 욕구가 아닐 수 없다.
삶은 결코 희망 콘서트가 아니다. 때로는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불쾌하다.
따라서 때때로 향수라는 약을 복용하면서 인생에 다시금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는 아름다운 경험을 불러내어, 과거가 우리 안에 계속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기억은 정신적 위기를 치료해주는 약이다.
아니 그 이상이다. 그러니가 기억은 고독을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 기억이 다른 사람들과의 경험을 포함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따라서 기억은 우리에게 소속감을 주기도 한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향수는 사회적 연대감을 강화한다.
향수는 자부심처럼 자존심을 고양한다. 그리고 향수는 기쁨처럼 행복감을 높여준다.
시간을 재화로 보는 사람은 삶에서 아름다운 것에 대해 눈을 감은 셈이다.
지난 수십 년간 주관적인 삶의 속도는 매우 빠라졌다. 그 바람에 스트레스와 이기주의를 초래했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현재 상황에 점점 더 만족하지 못하고, 그만큼 더 과거로 정신적인 여행을 떠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아름다운 일을 강조하고, 아름답지 않은 일은 지우는 습성이 인간의 기억에 내재하는 게 분명하다.
길버트에 다르면 이것은 우리의 심리적 면역계에 원인이 있다.
심리적 면역계는 뇌가 부정적인 경험을 긍정적인 경험과는 다르게 취급하도록 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심리적 면역계는 부정적인 경험을 빨리 잊고, 긍정적인 경험은 더 오래 보존하도록 한다.
이런 시스템이 우리의 정신건강을 유지시켜 준다.
아름답지 않은 기억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퇴색하고, 아름다운 기억만 남는다. 우리 뇌는 그런 방식으로 우리를 속인다.
이런 미세한 조작을 통해 우리는 비극을 극복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즐기며, 기븐 마음으로 내일을 기다린다.
미화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이 어린 시절의 기억일 때는 특히 그렇다.
그러한 기억이 일깨워지면 우리는 변한다. 그것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인간을 원숭이와 개 또는 고양이와 구별해주는 것은 '자의식'이다.
인간은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인식에는 언젠가 우리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확신도 포함된다.
죽을 줄 알면서도 길을 떠나는 이야기 속 일레인처럼, 사람은 결국 죽음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어쩌면 그렇게 때문에, 한 번뿐인 삶을 제대로 살고 싶다는 욕망은 더욱 강해진다.
"지나간 삶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두 번 사는 것과 같다" -마르티알리스-
우리는 과거를 반추하면서 계획하고, 실수를 통해 배우고 수정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았던 삶은 우리 주변에 자국과 흔적을 남겼다.
이런 자국과 흔적이 나중에 개인적인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후각 신경계가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 근처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냄새는 여과되지 않고 대뇌변연계에 도달한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냄새는 감정이나 기억과 직접 결합한다.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은 셈이다.
음악이 거의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음악은 마법과 같은 힘을 지녔다. 음악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거나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우리를 웃게 하거나 눈물 날 정도로 감동시킬 수도, 위로하거나 일으켜세울 수도 있다.
무엇보다 우리 기억은 재생이 아니라 복원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억은 정보를 단순히 의식적으로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오히려 정보와 확신, 감정이 불명료하게 혼합된 결과이다.
우리의 기억은 데이터와 사실을 주도면밀하게 보곤하는 하드 디스크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그대신 기억은 정기적으로 시스템 오류와 시스템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무언가를 기억하고 그 내용을 끄집어낼 때마다 기억은 거듭 변화한다.
우리가 지금 처한 기분이나 정보에 따라 그 내용은 달라진다.
우리가 기억하는 행위를 자주 하면 할수록 기억이 희미해질 개연성은 더 높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없는 것보다는 틀린 기억이라도 있는 쪽이 훨씬 더 좋다.
기억은 결코 완벽하게 정황하지는 않다. 이미 여러 해가 지났다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기억은 생존에 중요하다.
현재를 잘 살아가기 위해 우리에게는 과거가 필요하다. 동시에 미래를 위해서도 과거는 필요하다.
어제에 대한 생각이 없으면 내일도 없을 것이다.
기억의 마력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특별한 능력에서 나온다.
우리는 기억 속에서 시간을 되돌릴 수 있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정신적 시간 여행;을 하는 이런 재능은 오직 인간에게만 있다고 엔델 털빙이 말했다....
다른 생명체와 달리 인간은 '자기인지적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간단하게 말해 우리가 기억한다는 것은 그것을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과거로의 이런 정신적 여행은 현실을 경험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
기억력은 우리가 내일을 위해 계획할 수 있도록 해준다.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도 이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
우리 조상들이 지난 겨울에 얼마나 추웠는지를 잊어버렸다면 다음 겨울을 위해 물품을 비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억은 인간이 미리 계획하도록 함으로써 생존을 유지하게 했다.
"기억을 잃은 사람은 정신적으로 죽은 것이다.
그 사람은 더 이상 미래를 도모할 수 없다. 미래를 창조한다는 것은 과거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우리는 소유물을 우리 자신의 일부로 간주한다."
"환경이 빨리 변하면 변할수록 고정된 기준점을 원하는 욕구는 그만큼 더 커진다."
우리는 늙어가는 사회에 살고, 이런 사회에서 기억과 향수는 점점 더 중요해진다.
젊은 사람들은 앞을 바라보고, 이상과 진보에 열광한다. 반면 나이가 들면 변화하려는 마음이 줄어든다.
이렇게 안주하려는 마음은 익숙한 것을 소비하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과거는 결코 우리 인생을 지배하지 못한다. 우리는 과거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식해야 한다.
우리는 현재의 도전에 대비해야 한다. 미래가 기회를 준비해놓고 기다린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기억에 도취되는 것이 결코 우리가 존재하는 유일한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
정신적인 창문으로 밖을 내다볼 용기가 없는 사람은 비에 젖지는 않겠지만 햇빛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양만 적절히 조절하면 향수는 비할 바 없이 좋은 기회가 된다.
향수는 우리 삶 도처에 존재하고, 우리 생각과 대화를 형성하고, 결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향수를 거부하거나 위험한 것으로 매도할 것이 아니라 감사해야 한다.
그 누구든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정점과 바닥, 만남과 장소를 경험한다. 물론 매일 똑같지는 않다.
모든 사람이 당신을 좋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장소가 당신을 매혹시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말과 만남, 경험은 모두 기억의 일부가 된다.
과거를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이중으로 즐거운 일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기억에 감사하고, 아름답지 않은 기억으로 위로받을 수 있다.
그 시절을 잘 극복했기 때문이다. 과거가 어떤 기억으로 남든, 그건 전적으로 우리 몫이다.
일찍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만큼 그것을 적절하게 표햔한 사람도 없다.
"지나갔다고 울지마라. 경험했으니 미소를 지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