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들/책에 있는 글

버나드쇼-지성의 연대기(헤스케드 피어슨 지음)

음풍농월. 2016. 10. 17. 10:19

철학자 C.E.M 조드는 말했다.

"우리 영국인들은 한 사람이 한 개 이상의 명성을 갖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데, 쇼는 적어도 여섯 개의 명성을 갖고 있다."

극작가는 물론 음악.미술.연극비평가.연설가.재담가.정치가.사상가로서 영역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을 원할 수는 없는 법"이라며 글쓰는 재능은 원래부터 타고 났다는 식으로 말하는 쇼를 보면 기가 차는 면이 없지 않다.


버나드 쇼의 어릴적 환경은 집안 전체적으로 음악적인 능력을 부여받았음을 알 수 있다.

거기에 비극을 사소하게 만드는 희극적인 발상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구성원 각자가 스스로 고립된 객체로 일상의 모든 것을 일구어가는 것을 보면 특색있는 집안임을 알게 해준다.

1876년부터 그는 9년동안 무일푼 신세로 지내며, 새뮤얼 버틀러처럼 영국 박물관 독서실을 제2의 집으로 삼고 많은 책을 읽어 나간다.

쇼는 채식주의자이기도 했다.

1879년 친구와 토론클럽에 가입하면서 논쟁에 익숙해지고, 말문이 트이자 논쟁을 즐기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을 "겁 많은 소방관"으로 비유하며, "두려움을 극복하고 하나씩 배워나가기 위해 매번 화재 현장에 뛰어드는 소방관 "이라고 했다.

페이비언협회는 그의 사회주의 활동의 근간이였고, 위에서 소개한 것처럼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한다.

그는 또한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그 자신이 자신을 이야기 한 것처럼 그의 주전공은 극작가였고, 스스로 천재라 칭할만큼 명료한 사고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난 내가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나의 기억력은 무차별적이지 않다.

지울 것은 지우고 남길 것은 남기며, 학업과는 무관하다.

나는 승부욕이 없고 상을 받고 두각을 나타내는 것에도 관심이 없어서 순위를 다투는 시험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배우려는 마음이 없으면 경험하고도 배우지 못한다.


"나는 내가 소위 말하는 위대한 인물이 될 운명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바라는 게 없는 자는 절망하지도 않는다."


쇼는 변화의 기운이 가득한 가운데 맹렬하게 일어나는 민중 운동에 자기도 모르게 휩쓸리고 있음을 느꼈다.

런던 웨스트엔드 지역에서는 신사 클럽들의 창문이 깨져나갔다. 폭발 일보 직전이였다.

그런데 갑자기 거래가 살아나고 일자리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당 30실링이 지급되었다.

그 결과 마법같은 일이 벌어졌다.

혁명의 조짐은 하룻밤 사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열혈 선동가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의 연설을 듣겠다고 모인 사람들이 수백 명에 달했는데, 이제는 열 명 남짓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주급 30실링이면 어떤 혁명도 살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자본주의자들은 힌트를 얻었다. 그리하여 실업수당이 생겼다.


그는 자기가 지도자라고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었고 지도자로서 책임감을 느껴본 적도 없었다.

다른 모든 19세기 민주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쇼 역시 '민중'에게 리더십은 물론 자주성과 정치적 지혜가 있다고 여겼다.

자신은 사회주의의 대변인일 뿐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그제서야 시위 중간에 한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와 "쇼 선생님, 우리를 이끌어 주십시요. 뭘 해야 할지 알려달란 말입니다"라고 했던 게 떠올랐다.

그의 언동의 무익함과 군중의 무력함이 뼈아프게 드러난 순간이었다.

유쾌한 깨달음은 아니었지만, 유익한 깨달음이었다.

그 순간 그는 링컨이 말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문구에서 벗어났다.


"정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고도로 전문적인 직업이라고."


쇼는 사회주의가 빠진 민주주의는 말이 안된다고 확신했다.

심지어 일반 국민이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으려 했다.

"사람들이 항상 차선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실패한 혁명가에게는 언제나 그렇듯 중상과 위증, 잔학 행위, 무자비한 사법적군사적 대학살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페이비언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만일 총격이 시작되면 다 끝난 후에야 나타날 작정이었다. 그들의 철학은 그들의 개인적인 정서를 반영하고 있었다.

쇼는 "나는 사상가이지 투사가 아니다"라고 했다. "총격이 시작되면 나는 침대 밑으로 들어가 진짜 건설적인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무슨 마가 끼었는지, 개혁가들은 늘 서로 미워하고 싸운다.

공격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들이 주로 세상일에 관여해서 그런건지, 자기가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개혁가가 되어서 그런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떤 이야기든 거슬리게 하지 않을 거면, 아예 안 하는 게 낫다.

귀에 거슬리지 않는 이야기는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의 감정을 배려하지 마라.

그들에게 제대로 일격을 가하고, 그들이 반격하게 내버려둬라.

그러면 그들은 당신과 더는 싸우려 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위기에 떠밀려 전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정말 아니다싶은 결과가 나타나서 급선회하기 전까지는, 내 안의 변화를 못 본 척하며 확고한 가정을 바탕으로 전진하는 사람입니다.


"친구 부인이랑은 당연히 사이좋게 지내야지, 하지만 현명한 남자라면 섹스 따위는 생각도 안 할 걸세."


그는 좋은 비평가가 되기 위한 네 가지 핵심 덕목- 읽기 쉽게 쓰는 능력, 불경스러움, 개성, 용기-을 갖추고 있었다.

예언자나 현자인 척하지도 않았다.

"평생 나는 공정한 비평을 쓴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런 비평은 쓰고 싶지 않다.

내가 바라는 것이 있는 한, 나는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서 편파적일 수밖에 없으며, 내 모든 기지를 동원해서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전파해야만 한다."

"어떤 예술가에 관해 사실을 완벽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비평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비평은 기껏해야 비평가의 관점을 설명하고 그 관점에서 예술가를 묘사할 수 있을 뿐이다."


개인적인 감정 없이 쓴 비평은 읽을 만한 가치가 없다.

좋은 예술이건 나쁜 예술이건 예술을 개인적인 문제로 만드는 능력이 그 사람을 비평가로 만든다.

내가 개인적인 반감 때문에 악평했다고 주장하는 예술가가 있다면 그는 제대로 본 것이다.


"불행의 비결은 내가 행복한지 행복하지 않은지 고민할 시간을 갖는 것"이라고 쇼는 적었다.

"치유책은 일. 일을 한다는 건 뭔가에 몰두하고 있다는 걸 의미하니까. 뭔가에 몰두해 있는 사람은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

움직이며 살아있을 뿐. 그건 행복보다 기분 좋은 상태다. 그일로 몸이 지치기 전까지는. 그래서 행복하려면 일단 피곤해져야 하는 것이다.

저녁식사 후의 음악회는 즐겁다. 하지만 아침식사 전의 음악회는 전혀 내키지 않고 그야말로 부자연스럽다.

과로하지 않은 사람은 휴가가 달갑지 않다.

과로한 사람이나 놀만한 여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다소 성가셔도 휴가가 필요하다. 영구 휴가? 그것은 지옥의 또 다른 이름이다."


매일매일이 노는 날이라면,

노는 것이 일하는 것만큼 지루해지겠지.

하지만 노는 날이 드문드문 온다면,

노는 날이 기다려지겠지.

드물게 일어나는 일만큼 즐거운 건 없으니.


박학다식만큼 거슬리는 것도 없고 도덕적 우월함만큼 짜증나는 것도 없다.


세 명의 대표 페이비언들은 서로의 정신을 끊임없이 훈련시켰다.

그들의 논쟁이 종종 어찌나 격력했던지 그 현장을 목격한 방문객들은 그들이 화를 내며 타협이 불가능한 싸움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논쟁은 그들의 일상이었다.


종교는 신을 상정해 놓고 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세상은 좋은 곳이라고 하는데,

나는 내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세상은 개선되어야 할 곳임을 알았다.


삶의 이유는 언제나 미래에 있다.

따라서 언제나 희망이 있고 언제나 기적이 있다.


"누군가의 세상에 대한 관심은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의 여분일 뿐"이라고 <상심의 집>에서 샤토버 대위는 말한다.


"초보 작가는 자기 작품보다 나은 작품이 시장에 있으면 자기 작품은 절대로 제작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만큼만 겸손하면 된다는 걸세.

작가의 겸손함은 딱 거기서 멈춰야 한다는 거지."


나는 언제라도 죽을 준비가 되어 있어서 죽음에 대해 무덤덤한 편인데 말이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랑이 들끊는 가정에서 지내는 것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인 양 얘기하는 사람들은

그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기가지 5분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에게 적대감을 드러낸 적이 없었던 사람들도 그가 좀 불리한 처지에 있다 싶으면

수년 동안 자신들을 괴롭혀온 억울함과 시기심을 한거번에 분출하려 든다는 것을 그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때 나는 이 나라가 진지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일생의 습관을 바구기는 쉽지않다.

좋은 충고를 해줘 봤자 이 나라는 또 죽은 듯이 잠잠하겠지만, 앞으로도 나는 충고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련다.


나는 악감정은 없었지만 그들에게는 충분히 질린 터라 핑계를 댔지.

예술 분야의 개척자는 누구나 원로들의 미움을 사기 마련이라서 그들의 모임에는 가입하지 않는 것이 좋아.

가입하면 그들에게 쫓아낼 수 있는 권리를 주게 되고 그들의 세력권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지.

개척자를 승리로 인도하는 건 신참과 아마추어들이야.

바그너는 음악계에서 그런 종류의 미움에 평생 시달렸지.


육체적인 고문은 가장 저급한 인간이 가장 고귀한 인간을 타락시키고 망가뜨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바른 행동은 알 수 없는 원리에 의해 일어나는 자기 존중이다.

사람이 얼마나 바르게 행동하는가는 그러한 자존감의 크기에 비례한다...

우리에게는 영혼이라고 하는 신비로운 무언가가 있다.

의도적인 악행은 영혼을 말살하며 영혼이 없다면 그 어떤 물질적 성공에도 삶은 견딜 수 없는 것이 된다....

바른 행동은 이성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이성 너머에 있는 신성한 본능의 지배를 받는다.

이성은 지름길을 알려줄 수는 있어도 목적지를 알려주지는 못한다."


사람이 본성은 그 사람이 세상에 대해 품고 있는 희망에서 드러난다.


"폭력적인  수단이 효과가 있을 때조차 폭력을 거부하는 태도가 바로 진보다."

'문명은 비판 없이는 발전할 수 없다.

문명의 정체와 부패를 막으려면 비판에 대한 면책을 선언해야 한다."

"시민 교육은 권위에 대한 맹복적인 복종 속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 아니라 자유롭게 논쟁하고 의심하고 불만을 품고 개선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을 뜻한다."

"국가 조직은 그 어떤 범좌자보다 더 사악해질 수 있으며 아무 거리낌 없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국가는 자신의 범죄를 합법화하고, 그 범죄를 정당화하는 문서를 위조하고, 그 실상을 드러내는 사람이있으면 고문하기까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