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갈 것인가 되돌아갈 것인가(스코트 니어링 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한평생 '조화로운 삶'을 치열하게 일구어 간 근본주의자.
책을 번역한 이수영씨가 붙인 글이다.
스코트 니어링은 버먼토에서 열아홉 해(1931년부터)를 살았고, 메인 주 페놉스콧 만 바닷가에서 스물세 해(1952~1974)를 살았다.
이 책은 1954년 메인에서 사회과학연구소를 세워 저술활동으로 편낸 책이다.
'조화로운 삶'이 버몬트의 실제 생활을 정리하였다면, 여기서는 조화로운 삶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개인의 삶과 사회 관계와 문명, 더 나아가 자연과 우주의 관계를 들여다 본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이들이 읽어보면 좋을 내용들이 많다.
조화로운 삶이란 좋고 아름답고 참된 것을 '열망'하는 것 이상이다.
그것은 혼자로든 집단으로든 결단, 의지, 노력이 다르다는 뜻이다. 또 이론에 밝아야 하고 제대로 실천해야 한다.
그대로 길을 갈 것인가, 비켜날 것인가, 되돌아갈 것인가? 오래도록 곰곰히 생각한 끝에 나는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역사가 생긴 뒤로 지금가지 개인과 사회는 언제나 달갑지 않고, 당황스럽고, 위험과 재앙으로 가득 차고, 가혹하고, 끊임없는 위기를 맞았다.
내가 맞딱뜨린 갓과 똑같이 말이다.....
쉽게 말해서 내 갈림길, 우리 세대의 갈림길, 서구인의 갈림길, 역사에 나타난 인류의 갈림길은 이상, 꿈, 희망, 목표, 계획으로 나아가는 길과
현실의 제약에 머무는 길 사이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의 올가미와 속임수를 툴툴 떨쳐 버리지 못하지만 자립하는 삶을 꿈꾸는 이는 자립하는 삶의 방식을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야 한다.
형광등 불빛 아래 펼쳐지는 대량 생산 체제가 주는 쾌감과 자극을 버리고 더 느리고 더 고요하게 새벽과 황혼, 별빛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시골에서 펼쳐지는 삶의 자질구레한 일상과 정해진 일과에서 만족을 느껴야 한다.
사람들은 멈추지 않고 욕망을 이어 나간다.
경쟁은 갈등과 맞닿아 있다. 남을 앞서는 것에서 한 발짝만 더 나가면 공격이 된다.
많은 친선 경기들이 주먹다짐으로 끝나는 이유는 상대보다 잘 하기보다 상대가 지게 만드는 것이 훨씬 쉽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결코 전쟁으로 갈등을 없애 버리지 못한다.....
전쟁이란 경쟁의 최고 형태가 아닌가? 전쟁의 영향 속에서 승리자는 상대를 약탈하고 해체하고 심지어 섬멸까지 하여 자신의 우월성을 나타내고 패권을 차지한다.
패배한 이들이 무조건 항복하면 승리자는 마음껏 도둑질하고 강간하고 살인한다.
아름다운 여성은 기꺼이 자랑스럽게 용감무쌍한 살인마의 품에 안긴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돈은, 돈을 가진 이가 돈 없는 사람의 노동에 기대어 먹고살게 해 준다.
부의 축적에서 한 발짝만 더 나가면 노력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노동으로 먹고산다....
이처럼 사회는 일을 해야만 먹고살 수 있는 사람들과 자산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는 사람들로 나눠진다.
사교, 경쟁, 부를 모으는 것은 사회관계의 세 측면이다.
그 결과 부, 소득, 지위, 권력이 한 사람에게, 기업과 같은 사회조직에, 대학과 같은 교육 기관에, 수도원이나 종교 기관에, 국가, 연방 정부와 같은 정치집단에 모아졌다.
부는 부를 끌어 모은다. 권력은 더 큰 권력에 손을 내민다.
버릇의 노예는 그 노예 생활을 이어 갈 자유를 요구한다.
가난, 실업, 도시 빈민가나 시골 오두막집의 지긋지긋한 생활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틀에 박힌 일상과 통제를 받아들이고 거대한 사회 구조의 톱니바퀴가 된다.
여태까지 현대인들은 기꺼이 이러한 대가를 치르면서 시장을 채울 수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했다.
군국주의는 스스로 파멸하는 경향이 있다.
문명은 팽창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팽창은 호전성을 가지고 있어 경제, 군사면에서 충동을 일으킨다.
더구나 도서관, 박물관, 대학이 대부분 정복자, 약탈자, 살육자, 파괴자의 손으로 채워지고 기증되고 보살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더욱 그렇다...
문명으로 이르는 길은 행복과 축복이 아니라 파괴와 죽음으로 뚫린 길이다.
바보는 전통과 관습과 습관이 이끄는 대로 막연히 나아간다. 많은 바보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삶의 방식에 대한 이러한 지도와 강요에다 누구나 알고 있는 낡은 잣대와 노인네들이 두고두고 말하는 미신까지 덧붙여지면 정말 쭉 뻗은 고속도로가 펼쳐지는 셈이다.
사회 조직은 박자에 맞춰 하던 일을 되풀이 한다.
안락과 편리와 안정이 삶의 목표인 사람들은 무기력하고 무관심하게 지낸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 사람들은 거의 모두 오랫동안 지켜 왔던 질서와 풍습을 따르고, 그것에 어긋나지 않게 살며 권력자가 정한 규칙에 복종하려 한다.
많은 이들이 이치에 맞는 결정으로가 아니라 여러 가지 억압 아래에서 할 수 없이 뜻을 같이 한다.
변화는 그 존재의 첫 번째 법칙이다. 변화는 의도가 있고 목적이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아무런 의도도 목적도 없는 것일 수 있다.
어떤 경우든 변화는 끊임없이 일어난다.
모든 경험에서 솟아나는 만족과 행복은 그것이 되풀이될수록 줄어든다. 맛난 음식은 첫술을 뜰 때처럼 맛있지 않다.
이튿날에 커튼을 보면 첫날만큼 기쁘지 않다. 만족은 처음에는 기쁨이었지만 다음에는 무관심해지고 싫증이 나고 불만으로 바뀌고는 고통이 된다.
살아가면서 나날이 커지는 만족과 기쁨을 얻고자 하는 이는 자신의 삶을 이루는 것들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것이 불편과 싫증과 불행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로움을 낳을 수 있도록 그것들을 결합하거나 다시 구성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성숙한 삶이란 무엇보다도 경험에 이성으로 반응하는 것을 말한다.
두려움, 증오, 분노, 질투, 지배욕 같은 감정들은 뒤로 밀어 놓고 상상력, 지각, 인식, 합리적 판단을 앞으로 끌어내어 머든 결정을 지휘하게 하는 것이다.
삶의 본질은 산다는 것이다. 사람을 둘러싼 조건들은 저마다 다르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순순히 따라야 할 것이 더 많다는 뜻이다. 모든 문제들은 본질로는 똑같다. 조화로운 삶은 분명히 있다.
그것을 확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조화로운 삶을 참으로 받아들이면 어떠한 상황, 어떤 조건 아래서도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다.
삶과 죽음은 하나의 과정을 이루는 부분이다.
모든 사람, 모든 사회, 모든 제도가 그 생명 주기를 순환한다. 생명 주기의 끝자락에서 존재가 시작된다.ㅣ
그 다른 쪽에서 변화가 되풀이된다.
진리의 탐구는 끝도 없고 때도 없다.
우리는 여원히 삶을 이어가고 배우고 이바지해야 한다.
조화로운 삶은 순례의 길이다.
죽어가는 문명은 우주의 조화로운 삶을 찾아가는 이를 거친 가시밭길로 이끈다. 그 길은 아무도 가 본 적이 없는 세계로 이어져 있다.
1941~1945: 2차 세계대전
1950~1953: 한국 전쟁
1953~1973: 베트남 전쟁
스코트 니어링 <거대한 광기><조화로운 삶><단풍 설탕 이야기>
토인비 <제국의 비극>
톨스토이 <고백>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워드 <응용 사회학>
몬터규 <인간의 진화>
소로킨 <이타적인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