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꾼 만남(정민 지음)
18년의 귀양살이 동안 후학을 양성하고 많은 책을 저술한 다산 정약용.
그의 제자 중에 특징적인 사람이 이학래와 황상이다.
입신출세의 야망으로 다산을 떠나 추사의 집에 식객으로 28년간 살던 이학래는 70세때 마지막으로 응시한 과거마저 낙방하자 우물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했다.
한 평생을 다산의 제자로 살아온 황상.
세월은 흘러가고 많은 이들이 생을 마감하고 자신마저 죽음의 길로 사라지지만 부지런하게 정진했던 공부 흔적은 강렬한게 우리의 의지를 자극한다.
내 스승이신 다산 선생님게서는 이곳 강진에 귀양 오셔서 스무 해를 계셨네.
그 긴 세월에 날마다 저술에만 몰두하시느라, 바닥에 닿은 복사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났지.
열 다섯 살 난 내게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해라'는 삼근(삼근)의 가르침을 내리시면서 늘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네.
"나도 부지런히 노력해서 이를 얻었느니라. 너도 이렇게 하거라."
몸으로 가르치시고, 말씀으로 이르시던 그 가르침이 60년이 지난 오늘가지도 어제 일처럼 눈에 또렷하고 귓가에 쟁쟁하다네.
관 뚜껑을 덮기 전에야 어찌 이 지성스럽고 뼈에 사무치는 가르침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그날로 나는 죽은 목숨일세.
뜻을 지극히 하고 힘을 부지런히 쏟아 책을 읽고, 책을 베끼고, 글을 지어야 한다.
'제게 세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첫째는 둔한 것이요, 둘째는 막힌 것이며 셋째는 답답한 것입니다.'
내가 말했다.
'배우는 사람에게 큰 병통이 세 가지 있는데, 네게는 그것이 없구나.
첫째 배우는 데 민첩하면 그 폐단이 소홀한 데 있다. 둘째, 글짓기에 날래면 그 폐단이 들뜨는 데 있지. 셋째, 깨달음이 재빠르면 그 폐단은 거친 데 있다.
대저 둔한데도 들이파는 사람은 그 구멍이 넓어진다. 막혔다가 터지면 그 흐름이 성대해지지.
답답한 데도 연마하는 사람은 그 빛이 반짝반짝 빛나게 된다.
뚫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틔우는 것은 어찌하나? 부지런 해야 한다. 연마하는 것은 어떻게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네가 어떻게 부지런히 해야 할까? 마음을 확고히 다잡아야 한다.'
첫 의문은 다소 엉뚱하고 작은 데서 출발했다.
작은 으문을 계통을 갖춘 지식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을 실패를 들어 보여주었다.
다산은 이것을 '격물치지의 공부'라고 했다. 격물은 사물을 바룬다. 즉 무질서한 사물을 가지런하게 정돈한다는 의미다.
헝클어진 문서를 탁탁 쳐서 네 귀퉁이를 반듯하게 맞추는 것이 바로 격이다.
이렇게 정돈하고 보면, 앞서는 잘 보이지 않던 의미가 반듯하게 드러난다.
사물을 바루어서 앎에 도달하는 공부가 격물치지다. 이것은 무슨 거창한 공부가 아니다. [조제사전]처럼 작은 공부가 차곡차곡 쌓여서 이루어진다.
1810년 9월, 큰아들 정학연은 꽹과리를 두드려 아버지의 사면을 요청해, 임금에게 석방 약속을 받았다.
방해 세력의 집요한 공작으로 막상 석방 명령서가 집행된 것은 그로부터 8년이 지난 1818년 8월의 일이었다.
왕이 석방 명령을 내려도 8년씩 집행하지 않는 나라가 당시 노론이 지배하는 조선이었다.
다산을 정점으로 당대 최고 명류들의 인연이 종횡으로 그물망처럼 얽히는 과정은 보기에도 아름답다.
큰 나무 한 그루의 그늘이 이리도 넓었다.
재앙은 늘 큰 기쁨 끝에 잇따르곤 했다.
슬픔은 혼자 오는 법이 없었고, 기쁨은 겹쳐 오지 않았다. 흥겨움은 슬픔이 곧 닥칠 전조였다.
달콤해 꿈같다 싶으면 금방 쓴 일이 일어났다.
삶은 늘 느닷없이 좀 체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처음과 끝이 이렇게 한결같았다.
여든 셋의 수를 누렸지만, 지음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을 뜬 후 득의의 세월은 다시 오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다시 세상에서 잊힌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