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들/책에 있는 글

책벌레와 메모광(정민 지음)

음풍농월. 2016. 1. 18. 19:55

드디어 책이 도착했다.

찜질방에서 따뜻함을 누리며 단숨에 읽어 나갔다.


오래된 책에는 책 벌레가 산다.

그 책 벌레와 자신을 동일시 하고, 책을 사랑한 사람들.

책을 읽고 그 느낌과 생각을 책에 메모하고,

그리고 그 모여진 생각을 모아서 책을 저술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책을 쓰는 일은 고통스런 과정이 아니라, 책을 읽고 사유함으로서 발생하는 자연스런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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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책을 구하지 않았지만 아래의 구절 하나 만을 보고 구매를 결정했다.

진정 나에게 뭔가를 선사하리라 기대할 수 있는 책이다.

책의 도착을 기다리며 설레이는 마음으로 인터넷에서 찾아낸 구절을 옮겨본다.

언젠가는 나도 이렇게 글을 쓰게 될 날이 오겠지.


군자는 글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써 어짊을 보탠다고 하였소.


책은 장서인을 찍은 사람의 소유가 아니다. 읽는 사람이 주인인 물건이라 정해진 임자가 있을 수 없다.


글의 첫 구절이 쇄서지석(曬書之夕)이다.

쇄서는 1년에 한두 차례 볕 좋고 바람 시원한 날 방안의 책을 모두 꺼내 바람 잘 드는 마루나 그늘에 펼쳐 놓고 뽀송뽀송하게 말리는 독서인의 연중행사다.


흑백만이 아닌 두 종류 이상의 색깔을 입힌 인쇄물을 투인본이라한다.


최초로 책을 출판하기 이전에는 책을 붉게 인쇄합니다....

아하! 붉은 책은 초교를 보기 위한 교정쇄를 묶은 책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출판사에서 저자에게 보낸는 초교지인 셈이다....

전문 용어로 이 빨간 책은 홍인본 또는 주인본으로 불렸다...

남인본

초교를 마친 뒤 재교용으로 찍은 푸른색 인쇄다. 의미는 홍인본과 같다.

옛사람은 인쇄할 때 붉은색 -> 푸른색 -> 검은색의 순서로 찍었던 셈이다.


편지에 나오는 용서(慵書)란 남에게 사례를 받고 그를 위해 책을 베껴 써주는 일을 말한다.


무릇 한 권의 책을 얻더라도 내 학문에 보탬이 될만한 것은 채록하여 모으고 그렇지 않은 것은 눈길도 주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비록 100권의 책이라해도 열흘 공부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책은 눈으로 볼 때와 손으로 쓸 때가 확연히 다르다.

손으로 또박또박 베껴 쓰면 또박또박 내 것이 된다.

눈으로 대충대충 스쳐 보는 것은 말달리며 하는 꽃구경일 뿐이다. 베껴 쓰면 쓰는 동안에 생각이 일어난다.

덮어 놓고 베껴쓰지 않고 베껴 쓸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먼저 저울질해야 하니 이 과정이 또 중요하다.

베껴 쓰기는 기억의 창고에 좀더 확실하게 각인시키기 위한 위력적인 방법이다.

또 베껴 쓴 증거물이 남아 끊임없이 그때의 시간으로 되돌아가게 해주는 각성 효과가 있다.

초서의 위력은 실로 막강하다.


구서재(九書齋)는 책벌레 이덕무가 젊은 시절에 자신의 서재에 붙였던 여러 이름 중 하나다....

그의 저서에 <耳目口心書, 이목구심서>라는 책이 있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느낀 것을 글로 썼다는 것이다.


이덕무는 열여덟 살 때 자신의 거처에 구서재란 이름을 붙였다.

책과 관련된 아홉 가지 활동이 이루어지는 집이라는 뜻이다.

그 아홉 가지 활동은 바로 독서(讀書), 간서(看), 초서(秒), 교서(較), 평서(評), 저서(著), 장서(藏), 차서(借), 포서(晡)였다.

첫째는 독서다. 옛사람은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 입으로 읽고, 눈으로 읽고, 손으로 읽었다. 독서는 입으로 소리 내서 가락을 맞춰 읽는 것이다....

소리내서 읽으면 좋은 점이 참 많다. 좋은 글에는 무엇보다 리듬이 살아 있다. 훌륭한 책은 내용도 좋지만 무엇보다 글의 가락이 자연스럽다.

글의 결은 소리를 내서 읽어야 비로소 느껴진다. 좋은 글을 여러 번 소리 내서 읽으면 말의 가락이 살아나서 울림이 더 깊어진다.

오늘날은 낭독의 중요성이 강조되지 않지만 좋은 글을 쓰려면 소리내서 읽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두 번째는 간서다. 눈으로 읽는 것이다.

세 번째는 초서다. 초라는 한자는 베낀다는 뜻이다. 책을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부분을 베껴 가며 손으로 읽는 것이다...

손으로 베껴 쓰면서 읽으면 읽고 나서도 내용이 오래 기억되고 생각이 명료하게 정리되어 독서의 효과가 대단히 높았다.

네 번째는 교서를 뽑았다. 교서는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살펴 보아 교정해가며 읽는 것이다.

다섯번째는 평서다. 평서는 고서보다 좀더 적극적인 독서 활동이다. 평서는 책을 읽고 나서 책의 인상적인 부분이나 책 전체에 대한 감상과 평을 남기는 일이다.

여섯번째는 저서다. 독서가 깊어지면 남의 책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제 생각을 평쳐 보이고 싶어진다.

비로소 붓을 들어 먹물에 적신 후 흰 종이 위에 자기의 생각을 적어나간다. 이제껏 책 읽기와 관련된 여러 활동은 사실 이 순간을 위한 준비에 불과하다.

사람은 제 말 하자고 사는 존재다..... 저서는 글쓰기다. 이제까지는 남의 글을 읽기만 했는데 많이 읽고 자구 생각하다보니 나도 할 말이 생긴 것이다.

일곱번째는 장서를 들었다. 장서는 책을 보관한다는 뜻이다. 책을 잘 간수해서 찾기 쉽게 배열하고, 낡아서 해진 책은 새로 묶고 표지를 바꾼다.

여덟번째는 차서다. 차서는 남에게 책을 빌리는 것이다.

아홉번째는 포서다. 포서는 책에 햇볕을 쬐어 말리는 일을 말한다.


대화를 나누거나 책을 읽다가 기억하고 싶은 구절을 적어둔다.

순간 떠오른 생각을 즉각적인 메모로 포획한다. 모든 생각이 다 쓸모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생각의 씨앗 없이 사고는 발전하는 법이 없다. 순간적인 생각만이 아니라 이 책을 읽다가 저 책이 생각나고, 이 생각을 하다가 저 생각이 떠오른다.

그것도 적어 둔다. 그런 메모들이 차곡차곡 쌓여 생각에 날개가 달리고 사고에 엔진이 붙는다.

처음엔 막연하고 아마득했는데 메모하면서 정돈하다보면 생생하고 성성해진다.


메모는 기억의 한계로부터 생각을 지키려는 방어기재다. 메모가 없이는 기억은 지워지고 생각도 쉬 떠난다.

공부는 기억과 생각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 퍼뜩 스쳐간 생각은 그저 나은 것이 아니다.

떠오른 생각은 그때그때 붙들어두지 않으면 연기처럼 사라지고 만다. 운좋게 되살려도 처음 그것과는 다르다.

붙들려면 적어두어야 한다. 적어둘 때 내 것이 된다. 적어둬야 또렷해진다.


생각은 누구나 한다. 하지만 그 생각을 아무나 적지는 않는다.

적을 때 생각은 기록이 된다.

덮어 놓고 적기만 할 게 아니라 계통과 체계를 가지고 적으면 그 효과가 배가된다.


눈길을 주기 전에는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니고 봐도 본 것이 아니다.


"한 권의 책을 다 읽을 만큼 길게 한가한 때를 기다린 뒤에야 책을 편다면 평생가도 책을 일을만한 날은 없다.

비록 아주 바쁜 중에도 한 글자를 읽을 만한 틈이 생기면 한 글자라도 읽는 것이 옳다."


자투리 시간을 책 읽기와 글쓰기로 채우는 데는 연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세 끼 밥을 먹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처음 메뉴얼만 정확하게 잡아 놓고 시작하면 한 권 분량이 묶이는 데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잊어버리고 하면서 하나 하나의 내용을 음미하다 보면 어느새 한 권 분량에 닿아 있었다.


공부는 제 말하자고 하는 일이다.

평생 앵무새처럼 남의 말이나 주워 모아 그것을 공부의 보람으로 알면 슬픈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사색과 실천 없이 말만 마구 떠벌리면 망발이 된다.


꿈은 놓아두면 금새 기억에서 사라진다. 생각나지 않는 꿈은 개꿈과 같다.

꿈에서 깬 뒤 바로 노트에 적어둔 한 구절이 오늘의 이 생각을 만들었다.

메모는 간단하지만 그 효과와 결과는 결코 간단치 않다.

그중에서 퍼뜩 떠오른 생각을 잡아채는 묘계질서야말로 메모의 꽃이다.


말이 그 사람이요, 글이 그 사람이란 말이 실감났다.

사람은 생긴대로 말하고, 말하는 대로 생긴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이 그대로 보인다.


막상 아무 할 일이 없는 것이야말로 더 미칠 노릇인 줄을 알아야 한다.

문제는 바쁜 가운데 스스로 만들어 찾는 꿀맛 같은 휴식과 여유를 어떻게 가꿔나가느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