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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이주한 지음)

음풍농월. 2015. 9. 21. 19:43

 

사물을 선과 악, 흑과 백, 천사와 악마, 좋은 놈과 나쁜 놈으로 인식하는 이분법의 뿌리는 송시열과 노론에서 비롯되었다.

17세기 이후 '사문난적(주자학을 문란하게 한 도적)이라는 말이 생겨 주류 학문은 나와 다른 학문은 타인을 억압하고 유폐하는 폭력적 도그마로 변질했다.

 

노론은 일제에 나라를 팔아먹는 데 앞장서면서 권력을 향유했다.

"역사적 사실에서 보면 일한병합이라는 것은 중국으로부터 일전하여 일본으로 옮기는 것이다."

"조선 국민은 대일본제국의 국민으로서 그 위치를 향상시키는 일이 될 뿐이다." 이것이 대표적 노론 명가 출신이자 당수인 이완용이

한국 최초 근대 소설로 추앙받는 [혈의 누]의 저자이자 비서인 이인직을 통해 일제 통감부에 전한 노론 당론이다.

 

노론사관과 식민사학은 실체없는 유령이 되었다.

노론 후예들은 노론이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내가 왜 노론 후예냐고 항변하며 입으로는 식민사관 극복을 외치고, 머리로는 식민사관을 반복한다.

불편한 진실이다. 진실을 애써 외면해야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기에 이들은 자신의 목적을 배후에 숨기고 난해하고 현란한 트릭을 구사한다.

권력 독점은 탐욕과 지배욕, 공격성과 통제력, 타인 파괴와 자기 파멸을 부추겨 인간을 황폐화한다.

 

역사 논쟁은 가장 치열한 사상 논쟁이다....

"어리석은 자는 한평생을 두고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마치 숟가락이 국 맛을 모르듯이" -인도 승려 법구-

 

공부는 끊임없이 질문을 통해 자신의 편협됨과 부족함을 가슴으로 깨닫는 과정이다. 세상 모든 문제에 정답은 없다.

그러나 숨은 것은 장차 드러나고 감춘 것은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게 마련이다.

 

우리는 누구나 사실이 아니라고 알고 있는 것들을 믿어 놓고는 나중에 그것이 잘못이라고 밝혀지면 뻔뻔하게도 자신이 옳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할 수도 있다.

지적으로는 이 과정이 한없이 계속될 수도 있다.

이를 제지할 유일한 요소는 잘못된 믿음이 머지 않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에, 대개는 전장에서 맞딱뜨리는 것이다. -조지 오웰(1946)-

 

자신을 전체의 일부로 보고 구체적인 삶의 의미를 물으며 책임을 지는 사람이 지식인이다.

지식인은 약자에게 눈과 귀가 열려있는 사람이다.

터부와 금기에 도전하는 삶이 지식인의 책무이자 운명이다.

 

진실은 모든 일의 시초이며 또 모든 일의 종결이다.

진실이 없는 시초는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은 것과 같다. 진실은 그 자체가 힘이고 내용이고 창조다. -공자-

 

"사람은 오로지 가슴으로만 올바로 볼 수 있다.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그녀는 20대의 청상과부로서 [한중록]을 쓴 것이 아니라 일생의 대부분을 권력투쟁의 현장에서 보낸 70대의 노회한 정객으로서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한중록]을 쓴 것이었다.

 

혜경궁 홍씨가 당시의 정세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완곡히 세자의 병으로만 돌리려는 이유 중에는 친정아버지 홍봉한이 사도세자의 정치적 입장과 다른

노론의 대표 격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의 권력 세계와 위태롭게 혼자 맞서고 있는 남편 사이에서 홍씨는 병자인 남편을 택하지 않고,

부왕과 친정아버지 그리고 미래의 희망인 아들을 택한 것이다. -이금희, 한중록(상) -

 

세자는 어린 시절 독살설이 끊이지 않은 경종 비 선의왕후 어시의 궁녀들, 즉 소론 한상궁과 최상궁의 손에 자란다.

그러나 이 범주만 벗어나면 주변 인물은 노론 일색이었다.

대비 인원황후 김씨, 부인 혜경궁 홍씨. 장인 홍봉한 모두 노론이었다. 영조도 노론의 왕이었다......

영조는 재위 3년(1727년) 이른바 정미환국으로 소론 온건파에 힘을 실어주고, 이인좌의 안 이후인 재위 5년 기유대처분으로 사실상 탕평책을 실시한다.

그러나 영조의 탕평책은 노론은 모두 등용하지만 소론은 온건파만 등용하는 불완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노론은 탕평책에 불만이 많았다.

결국 나주벽서사건으로 탕평책은 완전히 붕괴되고 노론 일당 독재가 시작된다.

영조는 재위 25년(1749년), 열다섯살 세자에게 전위할 것을 전적으로 선포한 후 의례적 절차를 거쳐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킨다.

사람을 쓰는 것, 군사를 동언하는 것, 사형에 관한 것 세 가지와 국방에 관한 일만 왕에게 품의하고 나머지는 세자가 국정 전면에 나서서 처결하도록 했다.

 

공격이 자기 정당화를 낳고, 자기 정당화가 더 많은 공격을 낳는 것이다.

표도르 도스토엡스키는 이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형제들의 악한 아버지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이렇게 회상한다.

"그는 언젠가 '왜 그토록 미워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뻔뻔스럽게 대답했다.

'그는 내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어, 하지만 내가 그에게 더러운 술책을 부렸고, 그 이후로 나는 그를 더욱 미워했어."  -엘리엇 애런스.캐럴 태브리스<거짓말의 진화>-

 

뒤주에 갇히던 날 세자가 혜경궁 홍씨에게 "자네는 참 무섭고 흉한 사람일세. 오늘 내가 가서 죽겠기로...."라고 한 말은 정신병 때문이 아니다.

정신병은 커녕 명철하게 사태를 바라본 말이다.

 

팩트는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최대공약수다. 또 팩트는 사회적 합의다.

팩트 자체를 부인하면 더 이상 학자가 아니라고 봐야한다.

 

영조 31년(1755년) 발생한 나주벽서사건으로 소론은 초토화된다. 설상가상으로 영조는 재위 35년(1759년) 예순여섯의 나이로 열다섯의 어린 신부를 맞아들인다.

정조 사후 수많은 남인파 천주교도들에게 살육을 자행한 정순황후 김씨다.

김시의 부친 오흥부원군 김한구는 과거시험에 번번이 낙방한 낙방거사지만 충실한 노론 당인이었다. 딸이 왕비가 되면서 조정에 나와 사도세자 제거에 앞장선다.

 

노론은 나라를 팔아먹는 데도 조직적으로 가담한다. 일제는 1910년 8월 대한제국을 강점하고 그해 10월 76명의 한국인에게 작위와 막대한 은사금을 준다.

76명의 수작자를 분석해 보면 두 가지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왕실 인사다. 최고위직인 후작은 이완용을 제외하면 이재완, 이재각, 이해창, 이해승, 등 모두 왕실 인사다.

윤택영은 순종 비 윤씨의 친정아버지고, 박영효는 철종의 사위다. 또 하나는 사실상 '노론당인 명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집권노론 일색이다.

76명 중 소속 당파를 알 수 있는 65명의 당적을 분석하면 남인은 없고, 북인이 2명, 소론이 6명, 나머지 57명은 모두 노론이다.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가학증은 모두 하나의 본질적인 충동, 즉 다른 사람을 완전히 지배하고, 그 사람을 우리 의지를 펼칠 무력한 대상으로 삼고,

그의 신이 되어 그를 마음대로 다루려는 충동으로 귀속된다.

그에게 모욕을 주고 그를 노예로 만드는 것이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이며 가장 극단적인 목적은 그를 괴롭히는 것이다.

타인을 지배하는 힘 가운데 다른 사람이 자기 자신을 지킬 방도도 없이 고통을 겪게 하는 것보다 더 큰 지배력은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나 생명체를 완전히 지배함으로써 갖게 되는 즐거움은 가학적 충동의 본질이다. -에리히 프롬 인간의 마음-

 

송자학(송시열학)연구소에서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의 저자인 이덕일 소장을 칭찬할 리 있겠는가?

송시열 문중과 문중 학자, 노론 학자 500여 명이 모여 이덕일 소장을 성토하고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화형식도 했다.....

하인리히 하이네가 "책을 태우는 자는 끝내 사람을 태운다"고 말했다는 글을 어디선가 봤다.

 

정병설, 안대희, 유봉학, 오항녕의 논지는 늘 한결같다.

역사관, 가치관, 인격, 성향, 이데올로기, 몰염치, 거짓말, 왜곡, 독단, 교만, 어투, 논리, 편견, 독존 등 모든 면에서 일치한다.

노론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그 증세가 똑같다.

그래서 노론 바이러스는 인간 개개인을 파괴하고, 사회를 파괴하고, 문명사회를 파괴하고, 나라를 파괴, 아니 팔아먹는다.

 

조선 총독부는 해체되었지만 조선사편수회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로 살아남았다.

살아남아서 전국의 사학과를 지배하고, 온 국민의 역사관을 지배했다.

 

생각해 보니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시 땅 위엔 길이 없다. 다니는 사람이 많다 보니 길이 되어버린 것이다. -루쉰의 고향 -

 

해방 이후에도 덴리교 도복을 입고 신도 예배에 참석했다는 '이 oo 선생'이 국사학계의 태두이니 바뀔리 없다.

 

 

이덕일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이덕일 <사도세자의 고백>

이덕일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엘리엇 애런스.캐럴 태브리스 <거짓말의 진화>

이성무 <조선왕조사>

이성무 <조신시대 당쟁사 2>

장하준 교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최종덕 <인문학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에리히 프롬 <인간의 마음>

김용섭 <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

김용섭 <조선 후기 농업사 연구>

최재석 <역경의 행운-많은 고난을 헤쳐 나온 한 노학자의 회고록>